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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7. 10. 27. 19:14

윤여동설 - 삼국시대 (濊, 동예)와 맥()의 위치 - 최초공개

 

 

 

  창해군(滄海郡, 蒼海郡) 고지(옛 땅)를 새로 찾고보니 예(濊, 동예)와 맥()의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할 수 있게 되었다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 구려는 일명 ()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소요수)에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의 맥의 위치에서 소요수 부근으로 이주해간 맥족을 말하는 듯하다.

 

  구려는 원래 소요수 부근에 살던 소수맥의 나라였다가 북부여, 졸본부여에 통합되었고,

  부여(夫餘)는 북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로 나누어졌다.

  졸본부여(卒本夫餘)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고,

  동부여(東夫餘)는 북부여에서 북쪽의 창해군 예()의 땅으로 옮겨가 그 땅을 빼앗아 살았다.

 

후한서 부여국전 :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의 땅이었다.

 

삼국지 부여전 : 부여(동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에서 1천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말갈),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사방2천리이며 백성은 8만호(약40만명)이다..............그 나라의 옥새에 濊王之印(예왕지인)이란 글자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맥(필자주 : 창해군 예의 오기)의 땅이었으나 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 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땅을 빼앗긴 예()는 기원전 86년경 동쪽으로 이동하여 개마대산을 넘어 임둔군(臨屯郡)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 다시 예(濊 : 동예)를 재건하였다가 고구려에 복속되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예(東)이라고도 부른다.

 

  진번군과 임둔군은 원래 맥족들이 살던 땅으로서 이 맥족이 환인국과 환웅국의 중심 부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구려 6대 태조대왕 조에 언급되는 예(동예)와 맥이 바로 이들이고, 예(동예)는 책성(柵城) 부근을 차지하고 살았다.

  원래의 창해군 예국 백성은 28만명이나 되었으나 그 후 임둔 땅으로 옮겨간 이후의 백성은 2만호(약 10만명)에 불과하여 일부만이 그곳으로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후한서 예전 : 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동옥저), 남쪽으로는 진한(신라)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원삭 원년(B.C.128) 예군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으로 내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삼국지 예전 : 예(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 백성이 2만호이다.

 

  고구려는 북옥저, 동옥저, 남옥저, 동부여, 예(동예), 맥, 거란, 말갈 등을 복속시켜 대제국이 되었다가 멸망한 후 발해가 되었고, 신라는 가야, 백제를 복속시켰다가 고려가 되었는데, 후일 고려가 발해의 서경압록부(옛 환도성, 안시성으로서 현 북경 북쪽 발해진 부근) 지역과 남경남해부(현 내몽골 옹우특기 부근) 지역 그리고 동경용원부(동예로서 현 내몽골 고륜기 부근) 일원을 차지했다.

위 그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