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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발해국 5경의 위치와 서경은 조공길,남경은 신라길,동경은 일본길의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 2018. 5. 6. 13:02

윤여동설 - 발해국 5경의 위치와 서경은 조공길,남경은 신라길,동경은 일본길의 의미 - 최초주장

 

 

 

[중국에서는 지금 내몽골 파림좌기의 고성 터를 거란()의 상경임황부 터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은 발해국의 상경용천부 홀한성 터이다]

 

  발해국은 고구려 멸망 후 현주(중경현덕부)에 도읍하고 건국하였으나,

  문왕(대흠무) 때인 천보(A.D. 742-756) 말년에 중경(중경현덕부)에서 동북쪽으로 300리쯤 떨어진 상경(상경용천부)으로 옮긴다.

  발해국의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는 지금의 파림우기(巴林右旗)를 말하는 것이고,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는 파림좌기(巴林左旗)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도 파림좌기에는 아주 큰 옛 고성터가 남아 있다.

  지금 중국에서는 파림좌기가 거란()의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였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발해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 홀한성)였다.

 

중국에서는 지금 적봉 남쪽 영성(寧城)의 고성터를 요 중경현덕부 터라고 하고 있으나, 거란족은 원래 산서성 북쪽 지금의 내몽골 상도(商都), 오란찰포(烏蘭察布) 부근을 차지하고 살았던 민족이었지 대흥안령 동쪽에 살던 민족이 아니었다.

 

  옛 혼동강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북쪽 파림좌기, 파림우기 부근은 원래부터 속말말갈족이 살던 곳이었고, 발해국의 문왕은 그 후 정원(A.D.785-804) 중에 또 다시 상경(상경용천부)으로부터 동남쪽 방향에 위치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도읍을 옮겼는데, 곧 책성부(柵城府)라고도 부르던 곳으로서 예(동예)의 땅이었다.

  이때 발해국은 신라의 도읍 서라벌(금성) 가까이에 위치한 동경용원부로 도읍을 옮겼다가,

  성왕인 대화여 때 다시 상경(상경용천부)으로 되돌아가서 번성하다가 결국 그곳 홀한성(忽汗城)에서 멸망했는데,

  발해는 상경, 중경, 동경 외에도 서경과 남경도 있어 5경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의 국토는 51562주이다.

  숙신(肅愼)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6개주를 다스린다.

  예. 맥(濊, 貊)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한다.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4개주를 다스린다.

  옥저(沃沮)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3개 주를 다스린다.

  고구려(高句麗)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鴨淥府)이며,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豐州), 정주(正州)4개주를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고,

  “용원(東京龍原府)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 가는 길이고,

  남해(南京南海府)는 신라 가는 길이다.

  압록(西京鴨淥府)(중국에) 조공 가는 길이고,

  장령(長嶺府)은 영주 가는 길이며,

  부여(扶餘府)는 거란 가는 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 그림을 보면서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을 읽어보면,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왜 서경압록부를 중국에 조공가는 길이라고 했는지,

  왜 남경남해부를 신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지, 

  왜 동경용원부를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