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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천부인 세 개(天符印 三箇)의 진짜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 2019. 3. 25. 13:52

윤여동설 - 천부인 세 개(天符印 三箇)의 진짜 의미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서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품고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 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속에서 환웅을 서자(庶子)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서민(庶民)으로 본다면 환웅은 그 신분이 원래 고귀한 신분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고, 또 환웅국의 중심 강역이 태백산 부근임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일연은 이 내용이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고기(古記)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라고 원전을 밝혀 놓았다. 워낙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실체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천부인 세 개였다.

  그리하여 이 천부인 세 개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밝혀보려고 사람마다 학자마다 온갖 추측성 주장들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천부인 세 개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 때 처음으로 화씨벽(和氏之璧)이라는 옥을 다듬어 수명어천기수영창(受命於天旣壽永昌)”이라는 글자를 새겨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황제의 옥새(전국새라고도 한다)를 만들었다고 전해 오는데, 그 후 역대 중국의 황제들은 바로 그 전국새를 차지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전국새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천명을 받은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옥새에 관한 기록들이 전한다.

  신라본기 신라 남해차차웅 16(A.D.19) 조를 보면, “북명(北溟: 명주)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濊王印)을 주워 바쳤다.’는 기록이 있어 예국에서도 옥새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예왕의 도장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 부여(동부여)전에도 그 나라의 옥새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라 새겨져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濊城)이라는 옛 성이 있으니 이곳이 본래는 예의 땅이었으나 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온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부여가 예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는 그 예왕의 옥새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신대왕 조를 보면, “차대왕(次大王)이 피살되자 좌보(左輔) 어지류(菸支留)가 사람을 보내서 (백고를) 맞아 오게 하고는 그가 도착하자 꿇어 앉아 국새(國璽)를 바치면서 말하기를, ‘선군(先君)이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고 비록 아들이 있으나 나라를 맡길 수 없습니다. 무릇 인심이 인자하신 당신에게 돌아가므로 삼가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고 청하노니 부디 존귀한 왕위에 오르소서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고구려에서도 옥새(국새)가 왕위계승에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환인이 환웅에게 주었다는 천부인(天符印) 세 개라는 것도, 글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하늘이 권한을 부여해 준 도장 세 개라는 의미로서 절대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 개의 옥새(玉璽)"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천부인 세 개란,

  첫째는 나라의 왕임을 나타낼 수 있는 옥새로서 외교문서에 사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관료를 임면할 수 있는 옥새이고,

  셋째는 왕의 명령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찍는 옥새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개의 옥새만 있으면 절대왕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이때 환인은 신흥 강자인 환웅에게 절대왕권을 빼앗기고, 그 절대왕권의 상징인 옥새 3개를 태백산 마루턱에 있는 조천지(朝天池)의 신단수(神檀樹) 아래 신단(神壇)에서 환웅에게 인계함으로써 환인국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인 환웅국이 건국되었을 것인데, 전제왕조시대에 그러한 왕권탈취에 관한 내용을 곧이 곧 대로 기록할 경우 잘못하면 반역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고 환웅을 환인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여 자연스럽게 그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왕위가 이어진 것처럼 기록하여 논란을 피해갔던 것이고, 일연도 그 내용이 사뭇 조심스러웠던지 이 내용은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고기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보고 옮겨 적는 것뿐이라고 하기 위하여 출전을 밝혀 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 옥새명문]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옥새명문]

 

 

                     [대한민국 국새]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의 진시황보다 훨씬 먼 옛날 옛적부터 하늘이 부여해준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옥새를 만들어 그를 전해줌으로써 대를 이어 절대왕권을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전통이 대대로 전해져 지금 대한민국에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고, 천부인인 옥새로서 정통의 맥을 잇는 제도가 중국보다 훨씬 앞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도 대한민국의 중요한 국가문서에는 반드시 대한민국이라 새긴 국새를 찍어 그것이 하늘이 부여해 준 절대권한에 의해 작성된 문서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천부인 세 개란 바로 이러한 옥새(국새) 세 개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미처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지금까지 북이니, 방울이니, 칼이니, 동경(거울)을 말하는 것이라느니 설왕설래했던 것이다.

 

옥새 3개의 형태가 원, 방, 각의 형태였는지는 지금 잘 알 수 없다.

 

[참고]

  아래 옥도장들은 홍산문화권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라 한다.

  아주 먼 옛날 환인, 환웅, 단군왕검 때에도 우리 선조들은 이렇듯 도장을 파서 사용하였다.

  따라서 환국, 단국(환웅국), 왕검조선(고조선) 때도 국새(옥새)가 존재하였을 것이고,

  그 옥새(국새)는 왕조의 교체나 왕위의 계승을 상징했을 것이다.   

 

 

 

 

 

 

 

 

 

사실 위 천부인 세 개에 관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려다가 필자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역사연구자로서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또 한민족인 우리가 그 천부인 세 개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정립하지 못한 채 아리송하게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안타까워 공개하는 것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필자 윤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