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기자묘(箕子墓)가 있다는 평양성 북쪽 토산(兎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19. 6. 8. 17:40

윤여동설 - 기자묘(箕子墓)가 있다는 평양성 북쪽 토산(兎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기자묘(箕子墓)는 고려시대부터 평양성 북쪽 토산(兎山 : 토끼산)에 있다고 전해져 왔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평양성을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 착각하고 있으나, 사실 고려로부터 그 이전 원래의 평양성(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이 옛 고조선의 왕검성이었다.

 

한반도 평양에 있는 기자릉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새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하북성 승덕시의 북쪽을 뒤져 기자묘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토산(兎山)을 찾아낸 것이다.

  산의 형상이 마치 토끼가 앉아 있는 듯한 모양이다. 귀도 있고, 입도 있고, 눈도 있고, 몸통도 있어 그 산의 형상이 마치 토끼처럼 보였기 때문에 옛 사람들이 그 산을 토산(토끼산)이라 이름 짓고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평양성의 토산에 기자묘가 조성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자가 실제 그곳에 묻혀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사기 송세가(宋世家) 두예(杜預) 조의 주에는,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기자총(箕子塚)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고, 또한 고려사 예지(禮志) 잡사(雜祀) 조에 의하면, 1102(고려 숙종7) 10월에, 나라의 교화가 기자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그 묘를 찾아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자는 예부(禮部)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를 시행했다고 하기 때문에 이때에 이르러서야 고려에서 기자묘(가묘)를 새로이 조성하고 사당도 세워 제사를 지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