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 석씨왕들의 능원 금성 북쪽 양정구(壤井丘)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에는 석씨로서는 처음 신라 왕위에 올랐던 탈해이사금(탈해왕)의 능을 양정구(壤井丘)에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후의 석씨왕들의 왕릉 조성위치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그리하여 필자는 탈해왕 이후의 석씨왕릉들도 모두 이 양정구에 조성했기 때문에 능의 조성위치를 굳이 또 언급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위 : 양정구(壤井丘) 확대]
양정구(壤井丘) : 4대 탈해이사금릉(양정구 : 양정언덕)
(신라 석씨왕들의 능원) 9대 벌휴이사금릉(기록없음)
10대 나해이사금릉(기록없음)
11대 조분이사금릉(기록없음)
12대 첨해이사금릉(기록없음)
14대 유례이사금릉(기록없음)
15대 기림이사금릉(기록없음)
16대 흘해이사금릉(기록없음)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탈해왕이 서기 80년 8월에 85세의 나이로 죽자, “성(城)의 북쪽 양정구(壤井丘 : 양정언덕)에 장사지냈다[葬城北壤井丘]”라고 기록되어 있어, 양정구가 서라벌의 북쪽 방향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은 지금의 어디이고, 탈해왕이 죽어 묻힌 양정구는 또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위 지도를 보시라.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산천 조를 보면, “낭산은 경주부의 동쪽 9리에 있다” “선도산(서악)은 경주부의 서쪽 7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경주부의 위치를 비정해 볼 수 있고, 경주부 동쪽 4리에서 신라의 금성터도 찾을 수 있다.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신라의 탈해왕릉은 바로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내(錦州市內)의 북쪽 언덕에 조성되었을 것인데, 필자가 보기에 이 양정구에는 4대 탈해왕릉을 비롯하여 그 후손들인 9대 벌휴왕릉, 10대 나해왕릉, 11대 조분왕릉, 12대 첨해왕릉, 14대 유례왕릉, 15대 기림왕릉, 16대 흘해왕릉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양정구(壤井丘)는 아마 신라 석씨왕들의 능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