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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6가야(六伽倻)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1. 23. 10:40

윤여동설 6가야(六伽倻)의 진짜위치 최초공개

 

 

   

  가야(伽倻 또는 伽耶)는 여섯이 있었다.

  금관가야(金官伽倻), 대가야(大伽倻), 소가야(小伽倻), 성산가야(星山伽倻, 벽진가야라고도 한다), 고령가야(古寧伽倻), 아라가야(阿羅伽倻) 등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우리 6가야의 위치를 한반도 남부에 배치하고 있는데, 매우 잘못된 비정이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이었고,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이었으며, 백제의 도읍 웅진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마지막 도읍 사비는 하북성 당산시 난현(灤縣)이었기 때문이며, 변한에서 건국된 가야는 진한이었던 신라와 마한의 동북쪽에서 건국된 백제의 사이지역에 위치했었고,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우리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발해 북쪽에, 탐라는 발해의 남쪽 산동반도에, 왜국은 발해의 동쪽 요동반도에 위치하여 발해를 빙 둘러싼 형태였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선조들은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대륙에서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6가야는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부근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진황도 산해관 부근까지의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살았다.

 

[금관가야 수로왕이 신답평에 건설했다는 왕성 금관성은 지금의 흥성고성(興城古城)]

 

 

[금관가야 수로왕의 탄생설화가 깃들어 있는 진짜 구지봉인 지금의 흥성 수산(首山), 산의 전체 형상이 마치 거북이를 닮았다]

 

   금관가야(金官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葫蘆島市), 흥성시(興城市) 부근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비정되므로, 도읍성은 지금의 흥성고성(興城古城, 규모는 가로 세로 각800m, 좌표 동경1204227초 북위403715)이었고, 구지봉(龜旨峯)은 지금의 흥성 수산(首山)을 말하는 것이다.

 

 

   대가야(大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흥성시 사후소진(沙后所鎭) 부근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도읍성은 사후소진의 고성터(규모 가로세로 각550m, 좌표 동경1203429초 북위402850)로 추정된다

 

   소가야(小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흥성시 동신장진(東辛庄鎭) 부근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도읍성은 관참촌(關站村, 좌표 동경1202607초 북위402306)으로 추정된.

 

 

   성산가야(星山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수중현 관방진(寬邦鎭, 좌표 동경1200801초 북위403033) 부근으로 비정되는데, 도읍성의 위치는 아직 미확인 상태이다.

 

 

  고령가야(古寧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수중현(綏中縣, 좌표 동경1201958초 북위402015) 부근으로 비정되고, 도읍성은 수중현의 구시가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진 전위사탑(前衛斜塔)]

 

 

   아라가야(阿羅伽倻)는 지금의 요녕성 수중현 전위진(前衛鎭) 부근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도읍성은 전위진(前衛鎭, 규모는 가로세로 각900m, 좌표 동경1200546초 북위401130)이었을 것인데, 그 서남쪽 전소진(前所鎭, 좌표 동경1195644초 북위400535)에도 전소고성(前所古城, 규모 가로세로 각500m)이 또 있다.

   아라가야가 도읍을 옮겼던 흔적인지, 아라가야가 임나국(任那國) 또는 포상8(蒲上八國)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접경지역에 방어성을 쌓았던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1500-2000년전의 일이라서 6가야 도읍성의 위치비정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다만 위 그림처럼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호로도시 일원이 6가야의 강역이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6가야의 도읍성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