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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청자(靑瓷)는 비취옥기(翡翠玉器)의 대체품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11. 20. 13:57

윤여동설 청자(靑瓷)는 비취옥기(翡翠玉器)의 대체품이었다 - 최초주장

 

 

 

 

 

 

 

 

 

 

  세상 사람들은 왜 그 하고 많은 그릇 중에서 하필이면 색깔이 초록빛인 청자(靑瓷)를 선호하고 귀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의외로 간단해진다.

  그것은 바로 그 빛깔이 예로부터 천지의 정수(精髓)로 여겨온 옥() 특히 비취옥(翡翠玉)을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옥()이란 아주 먼 옛날부터 귀한 보물이라서 누구나 가지고 싶어 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 하더라도 그 값비싼 옥을 마음껏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모든 생활용품을 진짜 옥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옛날 우리의 환인, 환웅 그리고 단군들의 도장은 귀한 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옥새(玉璽)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고, 중국에서도 진시황이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옥으로 황제의 옥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 어느 도공이 오랜 연구 끝에 옥과 같은 색깔의 청자를 만들어 내자 왕실과 호족 층에서 먼저 그 청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청자를 옥기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때에도 청자는 귀하고 값이 비싸 일반인은 사거나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청자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인기상품이 되었을 것이고, 청자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도공은 아주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도공은 그 제작기법을 비밀에 붙이고, 아들에서, 손자로 비전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특허권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인데, 아무한테나 알려주지 않았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도공의 후손들은 좀 더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고, 청자를 좀 더 비싼 값에 판매하기 위하여 비취옥 색깔과 좀 더 가까운 청자를 제조하기 위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 결과 특히 고려의 도공들은 오묘한 색깔의 비색청자(翡色靑瓷)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상감청자도 만들에 내게 되었을 것이며, 그 후 고려의 비색청자는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옥을 특히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은 은은한 비취색이 나는 고려의 비색청자에 매료되어 고려청자를 매우 선호하였다고 하니, 이때 고려에서는 중국에 청자를 아주 비싼 값에 수출했을 것이다.

  지금도 고려청자는 아주 비싼 골동품이 되어 있어 일반인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물건이 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청자는 아주 귀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고 아마 그 가치는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지금 오묘하게 빛나는 그 고려의 비색청자 원래의 제작기법이 단절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청자는 원래 중국에서 먼저 제작하기 시작했다고도 하는데, 어찌되었든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는 우리의 고려에서 최초로 제작하였다고 하니, 고려의 도공들이 청자를 몇 단계 발전시켰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