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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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우리 역사학자들이 상고사와 고대사를 헷갈리고 있는 이유 – 최초공개

윤여동 2022. 9. 3. 13:47

윤여동설 우리 역사학자들이 상고사와 고대사를 헷갈리고 있는 이유 최초공개

 

 

  지금 우리 역사학자들이 역사적 지명의 위치에 대하여 헷갈리고 있는 것 중에, 요수(遼水)와 요동(遼東) 그리고 갈석산(碣石山) 등이 있다.

  요수와 요동의 위치를 잘못 비정하게 되면, 그와 관련되어 있는 우리 고대사의 기록들 모두를 잘못 해석하게 되고,

갈석산의 위치를 잘못 비정하게 되면, 고대 진장성(秦長城)의 시작점을 잘못 알게 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 발해(渤海) 동북쪽에 요하(遼河)라는 이름의 강이 있고, 요하의 동쪽을 요동(遼東)이라 하고 있으며,

지금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에 갈석산(碣石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고, 진황도 산해관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개의 우리 역사학자들은 현재의 지명이나 이름이 옛날에도 같은 이름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역사서를 지금의 지명에 맞추어 해석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착각이고, 우리 역사학자들이 사서(史書)의 원전(原典)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고 판단되고, 역사왜곡 방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까지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왜곡할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 내었는지 혀를 찰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의 근세조선(이씨조선)과 왜국(일본)도 명나라와 똑같은 방법으로 역사를 왜곡했으니 명나라와 근세조선(이씨조선), 왜국(일본)은 역사왜곡에 있어 모두 공범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옛날 중국 사람들은 언제쯤 어떠한 방법으로 역사를 왜곡했던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시기는 명나라 초기로 판단되는데, 이때 동양3국에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주 커다란 천재지변이 발생했거나,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큰 사건이 발생하여 이때 발해 북쪽의 근세조선(이씨조선)은 한반도로, 발해 동쪽의 왜국(일본)은 현재의 일본열도로 위치를 이동하게 된다.

  그러자 명나라는 근세조선과 왜국(일본)이 떠나간 공지(빈 강역)와 그 주변국 땅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북부와 동내몽골지역 그리고 동북삼성 지역을 모두 차지하고는,

  요수(遼水)를 지금의 요하(遼河)로 옮기고는,

  옛 대륙왜국(일본) 땅에 요동군(遼東郡),

  옛 대륙신라와 대륙가야 땅에 요서군(遼西郡),

  옛 대륙백제 땅에 어양군(漁陽郡),

  옛 요동군 땅이었던 지금의 북경에 북평군(北平郡),

  발해 북서쪽의 옛 현토군 땅에 상곡군(上谷郡)을 배치하고,

  옛 야인들이 살던 흑룡강성과 연해주 땅에 여진(숙신, 말갈,),

  옛 여인국, 용성국 땅이었던 길림성에 동부여를 배치하고는 관련된 지명들까지 모두 위치를 옮겨 배치함으로써 그 땅이 아주 먼 옛날부터 중국의 5군과 여진(숙신, 말갈), 부여 땅이었던 것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대륙에서 한반도로, 일본열도로 옮겨온 근세조선(이씨조선)과 왜국(일본)도 자기들이 원래는 대륙에서 살다가 언제, 무슨 사연이 있어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일본열도로 위치를 옮겨 다시 나라를 이루었다고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고, 옛 대륙의 지명과 역사를 그대로 옮겨 설치하고는 마치 자신들이 먼 옛날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에서 살았던 것처럼 역사를 서술했다.

 

  우리의 경우 옛 태백산이었던 백두산을 발해 북쪽에서 한반도 북쪽으로 옮기고, 북한산, 계룡산, 속리산, 지리산, 한라산 등 산들도 모두 한반도로 옮긴다.

  그리고 압록강, 두만강 등 강들도 모두 한반도로 옮겼고, 대륙 각 고을의 지명과 연혁까지도 모두 그대로 한반도로 옮긴다.

  왜 이렇게 대륙의 지명과 그 연혁까지를 한반도로 옮겨야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그러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래야만 했던 숨겨진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내막을 알고 있었을 근세조선 초의 어느 누구도 그러한 내막을 기록하여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에 이르러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반도에서 옛 고조선으로부터 삼한, 삼국, 고려를 지나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온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륙고려의 백두산 북쪽 북옥저에 위치하고 있었을 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개척했던 두만강 북쪽 700리에 위치한 동북9성의 공험진 선춘령과 그곳에 세웠던 고려지경 척경비를 한반도의 두만강 부근에서 찾으려 하게 된 것이고,

  한반도 경주의 흉노족왕국 왕릉들을 대륙신라 어느 왕의 왕릉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며, 김해의 흉노족 고총들을 가야시대 무덤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서울 부근에서 대륙백제 위례성과 한성을, 인천에서 미추홀을 찾으려 하는 것이고, 철원에서 궁예의 나라 대륙태봉국의 도읍 풍천원을 찾으려 하며, 한반도 전주에서 견훤의 대륙후백제를 찾으려 하는 것이고, 강원도 강릉에서 대륙동예와 명주를, 춘천에서 대륙맥과 춘주를 찾으려 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충북 충주에서 대륙신라의 중원경을, 청주에서 서원경을, 충남 공주에서 대륙백제의 웅진을, 부여에서 사비를 찾으려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북한 평양에서 대륙고구려 평양성을 찾으려 하며, 황해도 개성에서 대륙고려의 도읍 개경을 찾으려 하는 것이며, 함경도 함흥 부근에서 대륙옥저의 흔적을 찾으려 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다보니 사서의 기록과 역사의 현장이 일치하지 않아 역사학자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역사 해석이 엉망진창이 되어 지금까지도 미로를 헤맬 수밖에 없어, 한국사는 모두 가설의 역사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환인, 환웅으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을 지나 고려 때까지는 발해 북쪽 대륙에서 살다가 근세조선(이씨조선) 초에 한반도로 건너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지금까지 잘못 해석된 한민족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우랴.

 

한반도 남부에는 대륙백제에서 근초고왕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하고 한반도로 건너와 365년경 세운 무광왕의 반도백제가 있었다. 관세음응험기에 나타나는 백제 무광왕, 중국 사서들에 동성왕의 할아버지로 나타나는 백제 모도왕, 우전팔번(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에 나타나는 남제왕 등이 반도백제의 왕들이었다.

  또한 한반도 경주, 김해 지역에는 대륙에서 왕망의 신나라에 적극 협조했다가 광무제에 의해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이 서자 대륙에서 한반도 경주, 김해 지역으로 도망쳐 온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세운 흉노족왕국이 있었다. 지금 한반도의 경주, 김해 지역의 고대 유물들은 우리 신라 사람들이 남겨 놓은 유물들이 아니라 흉노족들이 남겨 놓은 것들이다.

  그리하여 한반도 서울, 경기. 충청, 전라 지역에서 4세기 중반이후의 백제유물이 출토되는 것이고, 경주, 김해지역에서 유목민족인 흉노족의 유물과 신나라 때의 화폐인 화천이 다량 출토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인식해야 우리의 고대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