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 임나(任那)는 발해 북쪽 하북성 진황도 일원 – 최초공개
중국 사서들에는 고대 왜국(倭國)의 위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전한서(前漢書) : 낙랑해 가운데
후한서(後漢書) : 한(韓)의 동남 대해 가운데
삼국지(三國志) : 대방(帶方) 동남 대해 가운데
진서(晉書) : 대방 동남 대해 가운데
송서(宋書) : 고구려 동남쪽 대해 가운데
남제서(南齊書) : 고구려 동남쪽 대해 가운데
수서(隋書) : 백제, 신라의 동남쪽
북사(北史) : 백제, 신라의 동남쪽
구당서(舊唐書) : 신라 동남쪽 대해 가운데
통전(通典) : 대방 동남쪽 대해 가운데
이상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의 일본이 한반도(韓半島) 동남쪽 열도에 위치하고 있고, 우리 역사학자들도 우리의 상고, 고대사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사서의 기록들을 해석했기 때문에 고대 왜국(倭國)의 실제 위치를 아직까지도 찾을 수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후한서 한전(後漢書 韓傳)을 보면, “한(韓)은 삼종(三種)이 있는데,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며,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고, 그 북쪽은 낙랑(樂浪), 남쪽은 왜(倭)와 접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濊), 맥(貊)과 접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倭)와 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한전(三國志 韓傳)에도,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했고, 남쪽은 왜(倭)와 접했다. 땅이 사방 4천리이다. 삼종(三種)이 있는데,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며,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한(三韓)과 고대 왜국(倭國)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삼한(三韓)과 삼국(三國) 역사를 연구하면서 사서의 기록들과 실제 한반도 지형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멀리 떨어져있었던 중국 사람들이 한반도의 사정을 잘 모르고 잘못 기록했던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사서의 기록들을 모두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다는 고대의 요동(遼東)이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을 말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는, 지금의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이해했고,
우리의 삼한(三韓, 마한, 진한, 변한)과 삼국(三國,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 등이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들이었음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찾고 보니,
우리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었고,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는 고구려 평양성(平壤城)과 백제 웅진성(熊津城)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피서산장(열하행궁)과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고성(盧龍古城)이었고,
수로왕의 금관가야 금관성(金官城)은 요녕성 호로도시 흥성고성(興城古城)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제의 전신인 마한(馬韓)은 지금의 북경 동쪽인 하북성 당산시 풍윤현(豐潤縣)을 중심으로 그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고, 신라의 전신인 진한(辰韓)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일원에, 가야의 전신인 변한(弁韓)은 역시 요녕성 호로도시(葫蘆島市) 일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대륙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었고, 우리 고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고대의 왜국(倭國)과 임나(任那) 역시 발해(渤海) 연안에서 찾아야 했던 것인데,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遼東半島) 일원으로 밝혀졌고, 임나(任那)는 지금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일본서기에 임나국(任那國) 하치호리현(下哆呼唎縣)의 별읍으로 기록되어 있는 구마나리(久麻那利) 즉 웅진(熊津)은 진황도 노룡현(盧龍縣)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반도 남부에 임나가 있었다 없었다 하면서 핏대 세우며 논쟁할 꺼리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고대사의 진실이었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한반도역사가 아니라 대륙역사였던 것이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선조들은 한반도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에서 대를 이어 살았고, 대륙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며, 수천년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명백하게 밝혀낸 한, 중, 일의 역사학자가 없고, 여전히 한반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 한반도에는 대륙백제에서 근초고왕과 왕위를 다투다가 패하고 365년경 대륙을 떠나 지모밀지인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에 도읍하고 수백년 왕조를 이어왔던 무광왕(武廣王), 모도왕(牟都王)의 반도백제가 있었으나, 신라, 가야는 없었다.
한반도 경주, 김해 등의 문화유적들은 유목민족인 흉노족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의 신(新)나라가 광무제에 의해 멸망하고 후한(後漢)이 서자 (잡히면 죽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대륙을 떠나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새로 세웠던 흉노족왕국의 흔적들이다.
그랬다가 한반도는 대륙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조선(근세조선)이 건국 초기에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옮겨와 차지하게 되는데, 그 세밀한 상황은 아직 잘 알 수 없다.
조선 초에 한반도에는 과연 어떠한 나라가 존속하고 있었는지, 반도백제가 이때까지 존속하고 있었는지, 흉노족왕국은 또 어떻게 되었는지, 원래 대륙에서 건국되었던 조선(근세조선)이 어떻게 한반도의 토착세력들을 제압하고 한반도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등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의문들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우리의 대륙역사가 한반도로 옮겨져 이어지게 된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때에 이르면 우리의 대륙역사 강역도 확실하게 밝혀낼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