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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충남 공주(公州)의 옛 이름 고마나루 중 “고마”는 곰이 아니라, 도성(都城), 치성(治城)이라는 의미인 “고마(固麻)”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 2023. 9. 17. 17:31

윤여동설 충남 공주(公州)의 옛 이름 고마나루 중 고마는 곰이 아니라, 도성(都城), 치성(治城)이라는 의미인 고마(固麻)”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양직공도 백제국사]

 

  양직공도 백제국사조를 보면, "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分子弟宗族爲之旁小國有叛 波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 文下 枕羅 等 附之(치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은 것이다. 22첨로가 있는데, 주변 소국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왕의) 자제와 종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파탁·다라·전라·사라·지미·마연·상사·문하·침라 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 백제전을 보면,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치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첨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남사 백제전에는, "號所都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土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도성을 고마(固麻)라 부르고, 읍을 첨로(檐魯)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 땅에는 22첨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세상에 백제는 두 곳에 있었다.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했던 대륙백제(온조백제)와 한반도 서부에 위치했던 반도백제(무광왕백제)이다. 

 

백제는 발해 북쪽,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대륙의 백제에서 12대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武廣王)13대 근초고왕 사이에 20여년간 왕위다툼을 벌이게 되었는데, 최종으로 승리한 근초고왕은 대륙의 백제 왕위를 이어가게 되고, 패한 무광왕은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국호를 역시 백제라 한다.

  이리하여 백제는 대륙과 한반도에 각각 존재하게 되는데, 필자는 대륙의 온조백제를 대륙백제라 하고, 한반도의 무광왕백제를 반도백제라 부른다.

  그랬다가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반도백제 모도왕(牟都王)때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 통합하게 되고, 반도백제 모도왕은 둘째 손자인 모대(동성왕)를 대륙백제로 보내 왕위에 올리게 된다.

  그런데 동성왕이 만년에 이르러 신하에 의해 시해 당하자 당시 반도백제의 왕위에 올라 있던 남제왕(男弟王, 필자주 : 동성왕과 무령왕의 형)은 다시 동생인 사마(무령왕)를 대륙으로 보내 백가의 난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르게 조치한다.

 

 누가 백제 무광왕(武廣王)과 동성왕의 할아버지였다는 백제 모도왕(牟都王)의 신분을 확실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이 두 백제 중 대륙백제는 주로 북조의 나라들과 교류하였고, 반도백제는 주로 남조의 나라들과 교류한다.

  따라서 남조의 역사서인 양서백제전과 양직공도 백제국사 조 그리고 남사백제전의 백제 고마(固麻)22첨로(檐魯)에 대한 기록은 반도백제에 관한 기사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즉 남조의 역사서는 반도백제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고, 양직공도 백제국사 조의 백제사신 모습도 반도백제에서 양나라에 보낸 사신의 모습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충남 공주와 고마나루]

 

  그렇다면 당시 반도백제에서는 도성을 고마(固麻)” 라고 불렀을 것인데, 지금 충남 공주(公州)를 지나는 금강에 있는 옛 나루터를  고마나루또는 곰나루라 부른다.

  그리하여 이를 웅진(熊津)이란 의미로 해석해 곰의 전설이 전해지는 나루로 이해하기도 했고,

  대륙백제의 도읍 웅진(熊津)이 되는 일본서기에 임나국(任那國) 하치호리현(下哆呼唎縣)의 별읍으로 기록되어 있는 구마나리(久麻那利)[필자주 : 구마는 곰, 나리는 나루라는 의미의 일본어이다]의 변음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도백제에서 도성(都城), 치성(治城)을 고마(固麻)라 불렀고, 한반도 충남 공주(公州)가 당시 반도백제의 도읍이었다면, 고마는 곰에서 유래된 말이 아니라 도읍인 固麻(고마)”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공주의 옛 이름은 "고마(固麻)" 또는 "고마성(固麻城) "이었을 것이고, 고마나루는 도성나루, 도읍나루라는 의미로서 도읍을 오갈 때 건너야 하는 나루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자! 사실이 이러하다면 곰나루라 불러서는 안되고, “고마(固麻)나루라고 불러야 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