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적성후성진졸본설 2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질산(質山), 좌원(坐原) 그리고 현토군(玄菟郡), 요동군(遼東郡)의 위치

윤여동설 - 고구려 국내(國內), 질산(質山), 좌원(坐原) 그리고 현토군(玄菟郡), 요동군(遼東郡)의 위치    [고구려 질산과 좌원 추정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회래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조를 보면,    “22년(A.D.3) 겨울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12월 왕이 질산북쪽(質山陰)에서 사냥하면서 닷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6대 태조대왕 조를 보면,    “55년(A.D.107) 가을9월 왕이 질산남쪽(質陽)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자주색 노루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8대 신대왕(新大王) 조를 보면,    “4년(A.D.168) 한(後漢)나라 현토군 태수 경림(耿臨)이 침입하여 우리..

카테고리 없음 2020.02.22

윤여동설 -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영녕고성(고구려 국내성 추정지, 규모 가로세로 각900m, 좌표 동경116도09분35초 북위40도31분25초)]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은 그 아버지인 추모왕(주몽왕)으로부터 꽤나 넓어진 강역을 물려받았다.  고구려는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꾼 나라였다. ☆ 주몽은 기원전 58년 봄에 동부여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으로 가서 딸만 셋이 있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 공주와 혼인을 했는데, 그 해 10월에 졸본부여의 왕이 죽으면서 그 왕위를 물려받게 되어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어 대제국 고구려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 추..

카테고리 없음 2008.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