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한반도 동해 감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릉이 아니다 - 최초주장 서기 681년 6월 문무왕은 죽음이 임박해지자 자신이 죽거든 장례를 호화롭게 치르지 말 것이며, 무덤도 커다랗게 만들지 말고, 서역 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간단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하고는 7월 초하룻날 죽게 된다. 그리하여 그 아들인 신문왕은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동해구의 큰 돌 위에 장사 지냈는데,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바위를 대왕석이라고 불렀고, 신문왕은 문무왕이 동해 바닷가에 짓다가 미처 완공하지 못한 감은사를 완공하여 아버지인 문무왕의 능을 수호하고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조치한다. 그런데 그 다음해 5월 초하루에 해관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에 작은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