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한반도 강화(江華)는 고대의 혈구(穴口)가 아니다 - 최초주장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단군이 제후를 봉한 후 천하가 밝아지고 고요하더니 10년 만에 남이(南夷)의 반란이 일어났다. 갑비고차(甲比古次)는 이미 남이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평정하였다.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를 더 보내어 갑비고차에 성을 쌓게 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키게 하였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에는 참성단(塹城壇)이 있으니 이것이 곧 단군이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두악(頭嶽)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은 북쪽으로 사냥가면 태백산(太白山)이었고, 남쪽으로 가면 두악(頭嶽)이었다. 갑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