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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울산 반구대는 사냥물을 나누던 장소였다?

윤여동 2007. 12. 23. 19:16

윤여동설 - 울산 반구대는 사냥물을 나누던 장소였다?

 

 

 

 

 

 

 

 

 

 

  

  한반도 울산 반구대 근처에 살던 옛 사람들이 강변의 바위에 그림을 새겨 놓았는데, 우리는 지금 그것을 "울산 반구대 암각화"라 부른다.
  그들이 언제, 왜 이러한 그림을 바위에 새겨 놓았는지 지금 그것을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바위 돌을 쪼아 그림을 새겨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곳에 온갖 그림을 새겨 놓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인데, 대곡천 중류의 천변에 위치한 넓은 바위 면에 여러 종류의 고래, 여러 종류의 동물, 옛사람모양 등을 새겨 놓은 것이다.
  실물을 보고 그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사실적이다. 
  그리하여 어느 사람은 그곳이 수렵어로를 잘 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이었을 것이라 하기도 하고, 또 어느 사람은 후세를 교육시키는 학교 같은 장소였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제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옛날 수렵어로시대에 그러한 짐승이나 물고기가 잘 잡히게 해달라고 바위에 새긴 후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을 것이라 하기도 하고,
  교육장소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옛날에는 사냥을 잘하는 것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므로 후손들에게 짐승들과 여러 종류의 고래 모양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사냥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같은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곳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해준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고, 사냥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사냥물을 분배해 주는 장소였기 때문에 잡아온 사냥물을 직접 보고 그 모양을 바위에 새기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세월에 걸쳐 동물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새겨지게 되었을 것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되어, 후세에 이르러서는 교육장소로서의 역할도 겸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동물 앞에 사람이 그려져 있는 것은 그 동물 사냥시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표시했거나 부상 또는 죽은 사람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되어 후세 사람들은 산으로 사냥을 나가기 전에 목표로 하는 동물들의 모양을 숙지할 수 있었고, 그 동물의 특징이나 위험성 등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동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에도 고래, 바다사자, 거북 등 바다동물의 종류, 특징, 행동습관 등을 숙지해 사냥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암각화는 대개 강변 또는 천변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옛날에 강이 도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냥물을 갈라 나눌 때 그 흐르는 피를 씻어내기 위해 물가에 위치하게 되었을 것이고, 단단한 바위에 그림을 새기기 위해서는 바위보다 강한 쇠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인류가 쇠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일 것이고, 그러한 기술이 후세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후에는 마애불을 조각하는 석공예 기술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단단한 돌을 다듬어 글씨를 새긴 비석이나 돌을 조각한 예술품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기술은 아주 먼 옛날 암각화를 새기던 사람들로부터 전해져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어떠한 재료보다도 강하고 변질되지 않으며 불에 타지도 않기 때문에 비석이나 석공예 재료로 많이 활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절에 가보면 석불, 석탑 그리고 석등, 부도 등을 볼 수 있고, 조선시대 왕궁이나 왕릉들을 가 보아도 돌을 조각한 조각품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비록 돌이 조각할 때는 힘이 들지만 한번 만들어 놓고 나면 비바람 치는 환경에서도 수천, 수만 년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의 석공예 역사는 아주 먼 옛날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로부터 전해져 마애불을 새긴 사람들을 지나 석탑이나 불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기술로 점점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을 것인데, 석공예품의 백미로 꼽히고 있는 경주 석굴암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이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에서 가까운 곳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