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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0. 11. 07:53

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삼국지 한(韓) 전에는,
  "(후한) 환제와 영제 말기에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군·현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가자 건안(A.D.196∼219)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 장창 등을 보내 유민을 불러모으고, 군대를 일으켜 한과 예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점점 돌아왔고 그 후 왜와 한이 드디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

  경초(A.D.237∼239) 중에 명제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대방군이 공손강에 의해 건안 중에 설치되었고, 그 위치는 둔유현의 남쪽이며, 주변에 한과 예 그리고 왜가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지금 우리는 둔유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잃어버려 대방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대방군의 위치에 대한 주장은 대개 세 주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남원대방설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라 한반도의 전라북도 남원이 대방군이었다고 주장하는 설이고,
  둘째는 황해도대방설로서 한반도의 황해도에 대방군이 설치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며,
  셋째는 준화대방설로서 대방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북경 동쪽 준화 부근을 말하는 것이라는 필자가 주장하는 설이다. 

 

남원대방설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원도호부 조 건치연혁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 전북 남원 부근이 대방군이었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남원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本百濟古龍郡 後漢建安中爲帶方郡 曹魏時南帶方郡 後 唐高宗 遣蘇定方滅百濟 詔劉仁軌檢校帶方州刺史 未幾新羅文武王幷其地神文王四年置小京景德王改今名"이라 기록하고 있다.
  해석해 보면 "본래 백제 고룡군이다. 후한 건안 중에 대방군을 만들었는데 조위 때는 남대방군이 되었다. 후에 당 고종이 소정방을 보내 백제를 멸망시키고 조서로서 유인궤를 대방주자사로 임명했다. 어느 땐가 문무왕이 그 땅을 차지했고, 신문왕 4년에 소경(남원소경)을 설치했고,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기록을 보고 지금 한반도의 전라북도 남원이 옛 대방군이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다른 수많은 사서의 기록들을 충족할 수 없자 요즈음에는 주장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 주장을 우리 역사와 연결시킬 경우 삼국지 한전의 기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국지 한전에는,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남쪽은 왜와 접했다. 땅이 사방 4천리이다.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며,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전북 남원이 대방군일 경우, 그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78개국으로 이루어졌다는 삼한이 전라남도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는 말이 되고, 삼한의 강역이 사방 4천리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을 충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원도호부 건치연혁이 오기라고 판단하고는 역사 기록을 충족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나서게 된다.    
  남원대방설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되자 대두된 설이 황해도대방설이다. 

 

황해도대방설


  이는 우리가 경기도, 서울,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마한으로 인식하고 있고, 경상북도 지역을 진한, 경상남도 지역을 변한으로 인식하고 있고, 강원도 지역을 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황해도 지역에 대방군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비정한 것이다. 
  그리고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대방군의 정확한 위치를 제대로 찾았노라고 희희락락했다. 
  우리 역사의 중심을 한반도로 놓고 볼 때 황해도에 대방이 위치했다고 하고, 백제가 서울에서 건국되었다고 비정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 때문에 현재는 이 주장이 정설같이 되어 있다.
  다만 한의 면적이 사방 4천리에 이르렀다는 삼국지의 기록을 충족할 수 없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 대한 면적을 잘 알지 못하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해버렸다.
  한반도 지형과 일치하지 않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기록이 틀렸다고 해버리는 것이 뱃속 편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준화대방설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군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게 되어 최근에 이르러 필자가 새롭게 주장하게 된 설이다.
  이 준화대방설은 후한낙랑군이 하북성 승덕시 흥륭현 일원, 마한이 당산 풍윤을 중심으로 하북성 일부까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진한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 변한은 요녕성 호로도 흥성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왜까지도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밝히게 되자 자연스럽게 대방의 위치를 찾게 된 것이고, 덕흥리 고분 벽화에 나타나고 있는 유주 13군 태수들의 그림과도 관련이 있다.  
  후한서 한 전을 보면,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고,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과 접했다.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했다. 모두 78국이며 백제는 그 중의 한 개 나라이다.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가인데 각각 산과 바다를 경계로 한다. 그 땅을 합하면 사방 4천여 리이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하는데 모두 옛 진국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지 한 전에는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기록들을 한반도에 비정해 역사를 해석한다. 

 

      대방          후한낙랑             예(동예)
    (황해도)          (춘천)             (강원도)  
    

                (서울)
                                          진한
                                         (경주)
            마한   
           (익산)                         변한
                                         (김해)
     
                        왜
                      (일본)

 

  이러한 배치를 한반도에 비정하여 춘천을 낙랑이라고 하게 되었으며, 황해도를 대방이라 하게 되었으나 이 배치를 북경 부근으로 옮겨 배치하면 아래와 같다. 

 

                                                                            예(동예)

                                                                            (고륜기) 

             후한낙랑                                  맥

               (흥륭)                                  (능원)

                                                                            진한

(북경)        대방                                                  (금주시부근)
              (준화)                        

                                                                       변한 
                                        백제                    (흥성부근)
               마한               (도산부근)       
            (풍윤 부근)                    
                                        
      
                                                             왜
                                                        (요동반도)


  과연 어느 배치가 우리 역사의 진실일까?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으니 우리의 고대사도 당연히 한반도에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왔을까?
  낙랑군과 대방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었다고 본다면 우리 고대역사의 중심이 한반도였다는 말이 되고, 대방군이 북경 동쪽 준화현 부근을 말한다면 우리 역사의 중심이 바로 북경 부근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낙랑과 대방은 남북으로 이웃하고 있었으니 이 두 군은 떼어 생각할 수 없고, 한은 방 4천리에 이르는 넓은 강역을 가지고 있던 나라였고, 대방의 남쪽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한과 대방 역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후한)낙랑이 북경 동북쪽 흥륭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마한이 풍윤 쯤에 도읍하고 있었다면 대방 역시 당산 북쪽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즉 대방군은 흥륭의 남쪽 준화 부근에 치소를 두었던 것으로 비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대방군을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에 설치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해 전북 남원이 대방군이라고도 하고, 황해도에 대방군이 설치되었다고도 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역사를 얼마나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