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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호태왕 비문 신묘년 기사속의 "왜(倭)"자는 게으를 "권(倦)"자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0. 19. 12:00

윤여동설 -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기사 속 "왜(倭)"자의 원래 글자는 게으를 "권(倦)"자였다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에서 해석을 놓고 특히 한·일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은 영락6년(A.D.396) 병신년 조에 기록되어 있는 신묘년(A.D.391) 기사이다.

  원문을 보면,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신라이위신민이6년병신왕궁솔수군토벌잔국)

  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사 중의 "왜(倭)" 자가 정말 "왜" 자다 아니다 또는 일본 사람들이 글자를 변조했다, 그렇지 않다 등으로 나뉘어 주장들이 첨예하고, 조문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어디를 중심으로 하고, 어디를 끊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들이 팽팽하다.
  이는 비문이 한문이라는 불완전한 문자로 새겨져 있어 해석 방법에 따라서는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일본 학자들은,
而[倭]以辛卯年來渡海 / 破百殘☆☆新羅以爲臣民 / 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
  이렇게 끊어 해석하고 있다.
  즉 "왜가 신묘년(A.D.391)에 바다를 건너와 / 백잔...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자 / 영락 6년(A.D.396) 병신년에 광개토대왕이 수군을 몸소 인솔하고 백제(백잔)를 토벌했다" 라는 뜻이 된다.
  만약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경우 백제...신라 등이 옛날 한때 왜국의 식민지였다는 말이 된다.

  비록 이 일이 지금으로부터 1600년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 한민족으로서는 자존심이 대단히 상하는 일이고, 일본인으로서는 신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 조문을 위와같이 해석하고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데 적극 활용했다.
  일본학자들이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의 남부를 통치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칠지도 명문을 해석함에 있어 백제가 왜국의 왕에게 헌상했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비문을 위와 같이 해석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자기들이 한때 한반도를 지배한 적이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것은 한낱 망상일 뿐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고야 마는 것이다.   

 

  위 비문 중 괄호 속에 들어 있는 글자가 정말로 "왜(倭)"자일 수 있는 것일까?
  그 글자가 정말로 "倭" 자라면 고구려는 매우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만약 실제로 옛날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를 왜가 쳐서 신민으로 삼아 빼앗아갔다면, 고구려로서는 백제를 빼앗아간 그 당사자 즉 왜에게 백제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만약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구려는 왜를 상대로 전쟁을 했어야지 아무 힘도 없었을 백제를 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묘년 기사 중에 "(왜)"를 글자 형태가 비슷한 게으를 "(권)" 자로 바꾸어 놓고 문장을 해석하면 고구려가 백제를 친 이유가 명확해 진다. 

 

                                                                   

[위 : 而倦以(이권이)를 而倭以(이왜이)로 해석하고 있는 부분]

 

[선명해진 而倭以 : 필자는 이권이(而倦以)를 이왜이(而倭以)로 변조했다고 본다]

 

  광개토대왕이 비려를 친 것은 붙잡아간 고구려 백성을 돌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동부여를 친 것은 동부여가 옛날 추모왕 때 고구려의 속민이었는데 도중에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신년 조 역시 
 
   백잔(백제)과 신라가 옛날 고구려의 속민이었으므로 그런 이유로 조공을 바쳤었는데(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신묘년(A.D.391) 이래 (조공 바치는 것을) 게을리 하였기 때문에

(而倦以辛卯年來),

 

  바다를 건너 백잔(백제)...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영락 6년(A.D.396)인 병신년에 광개토대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잔(백제)을 토벌했다(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라는 말이 되어 해석이 매끄럽고, 정벌이유가 명확해 지는 것이다.

  즉  광개토대왕이 백잔을 치는 것은 광개토대왕이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영락 원년이래 대륙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때 백제는 반도백제와 대륙백제로 나누어져 있었고, 고구려는 반도백제를 정통으로 인정했고, 대륙백제는 백제의 나머지 무리라는 의미로 백잔이라 불렀다. 이때 반도백제는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쳤을 것인데, 아신왕의 대륙백제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은 대륙백제를 정벌했던 것이다 

 

  대륙백제가 조공만 잘 바쳤다면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정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당시 백제의 아신왕 때 도읍이었던 한성이 한반도의 서울 부근이 아니라 사실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도산(都山)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 사람들이 비문을 변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본 사람들이 비문을 변조했다면, 전혀 엉뚱한 글씨를 倭 자로 바꾼 것이 아니라 비슷한 글자형태를 지닌
"게으를 권(倦)" 자를 "왜(倭)" 자로 살짝 변조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추해보면,
  처음 비문을 변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았을 때 세월이 흘러 마모되어 (권) 자가 (왜) 자같이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글자가 자라고 생각하고 비문을 해석해보니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이 가능하니 그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글자가 倭 자라고 확신했거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실은 게으를 倦 자였으나 자로 바꿀 경우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 자기들이 원하던 대로의 해석이 가능하므로 탁본 등을 뜨면서 倭 자로 변조한 후 탁본을 떠 세상에 공개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자라면 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라면 저의가 깔린 변조였다 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지금 호태왕 비문의 신묘년 기사를 해석하기를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사실은 왜(倭) 자가 아니라 백제... 신라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치는데 게으름을 피웠다는 의미의 게으를 권(倦) 자인 것이다.
  이 조문은 사실 왜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비문을 다시 한번 세밀히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