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왜곡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6. 8. 23:26

윤여동설 -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왜곡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 등 고려의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1145년에 완성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정사이다.    
  그런데 이 삼국사기의 내용에 대하여 고려시대 사람들은 아주 잘 만들어진 역사서로 인식하여 송나라에도 보낼 정도로 자신 있는 사서였는데, 조선시대로 들어오면 삼국사기는 졸지에 잘못된 역사서의 대표격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에는 고려시대 사람들이 삼국사기를 잘 정리된 역사서로 보았고, 조선시대 사람들이 삼국사기를 잘못된 역사서로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신라의 건국지를 경주라 하고, 백제의 건국지를 서울부근이라 하며, 고구려의 건국지를 압록강 북쪽이라 하며, 삼국사기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의 기록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한반도의 지리적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기록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인 백제의 북쪽에 말갈이 있고,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위치하고 있다는 온조왕의 말과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있다는 신라 파사이사금의 말은 한반도의 서울 부근에서 백제가 건국되었다고 볼 수 없는 기록이고, 또한 마한의 동북쪽에서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마한왕의 말 역시 백제가 서울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기록이다.
  도대체 기초적이라 할 수 있는 방향자체가 맞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조선시대 사람들은 삼국사기 기록이 순 엉터리라 인식하게 되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똑 같은 기록을 보고도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삼국사기가 아주 잘 정리된 역사서라고 인식했던 것일까?
  중국 사서들은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고, 백제가 신라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삼국사기의 기록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중국 사서들이 말하는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이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 고대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진황도 창려현의 갈석산

 

 

                              발해에 닿아 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인 진황도 산해관 노룡두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감숙성 가욕관

 

  

  중국 사서들에는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
  "갈석산은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데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되었다"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
 

  "신라는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산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장성이란 곧 만리장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산해관으로부터 서쪽으로 북경 북쪽을 지나 감숙성 가욕관까지 만리를 뻗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승덕시 부근이 곧 옛 한나라 때의 낙랑땅이었다는 말이 되므로 우리가 지금 경주에서 건국되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신라가 사실은 한반도가 아닌 북경 동쪽 부근에서 건국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산시 난하 부근에서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으며, 진황도와 당산의 북쪽인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고구려가 위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어 한반도에서 우리의 역사가 고조선으로부터 삼한, 삼국, 고려, 조선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고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조상들은 대륙에서 살았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우리 고대 역사를 헷갈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 옛 강역의 중심이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조선이 건국된 후 도읍을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겨왔고, 그 후 언젠가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게 대륙의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이해하면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이다.  
  즉 삼국사기는 대륙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었으므로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고려시대 사람들은 그 기록을 잘 정리된 역사서로 이해할 수 있었던 반면, 한반도에서 살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삼국사기 기록이 한반도의 지리적 상황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순 엉터리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 중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김부식이 삼국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왜곡하지 않았고, 후세에 이르러서도 아무도 삼국사기를 일부러 왜곡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삼국사기 기록이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삼국의 기록임을 알지 못하고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삼국의 기록인 줄로 착각하고는 우리 역사 전부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대방을 한반도 황해도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했고, 하북성 승덕시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던 낙랑을 북한 평양 부근이라 했던 것이며, 난하하류에 도읍하고 주변의 사방 4천리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대제국 한(마한, 진한, 변한)을 사방 1천리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 남쪽에 억지로 구겨 넣어 역사를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고,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이라고도 한다)은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부근이다.
  신라의 천년도읍 금성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부근에서 찾아야 하고, 백제의 오백년 도읍 한성은 진황도 도산 남쪽부근에서 찾아야 하며,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난하 하류 난주(난현)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다.         
  지금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역사 전부를 해석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아직까지도 풀지 못해 헷갈리고 있는 것이고, 일부학자는 개인적으로는 우리 고대역사의 중심이 대륙이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있으나 학맥 때문에 이단아가 되기 싫어 공식적으로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일부 재야 역사연구자 중에 신라가 양자강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가 중국 동해안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고대역사의 중심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냈으나 그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고 옛 사서의 기록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