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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인절미의 고향은 충남 공주?

윤여동 2007. 11. 21. 22:47

인절미의 고향은 충남 공주?

 

공주 공산성 쌍수정

 

공산성에 복원해 놓은 임류각[그러나 원래의 임류각은 공산성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백제의 고도인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 쌍수정 아래에는 재미있는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인절미의 고향 공주" 라는 안내판이다.
  내용을 보면,
 『인절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찹쌀을 시루에 익힌 다음 그것을 절구에 찧어 조그맣고 네모지게 잘라 고물을 묻혀 만든 떡이다.
  그런데 왜 인절미라 불렀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인조대왕 2년 갑자년(1624년)에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당시의 서울인 한양을 침공하여 왔다.
  왕은 하는 수 없이 이 고장 공주로 피난하였다.
  피난 도중 우성면 목천리 근방 임씨댁에서 푸짐한 음식을 왕께 진상하였다. 조심스럽게 덮은 보자기를 걷어내니 콩고물을 묻힌 떡이 가득하였다.
  왕은 시장한 참에 덥썩 입에 넣었다.
  쫄깃쫄깃한 게 참으로 맛이 있었다.
  왕은 연거푸 몇 개를 잡숫더니 "맛이 있구나. 떡은 떡인 모양인데 대체 이름이 무엇이오?"하고 물으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떡 이름이 있을 텐데 아무도 모르니 참 기이한 일이오. 근데 이 떡은 어느 댁에서 만들어 왔소?"
  "임씨 댁에서 만들어 진상했습니다"
  왕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임씨라...임씨라...그것참 절미로다 절미로다"
  그리하여 임씨가 진상했다하여 이때부터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임의 미음(ㅁ)이 니은(ㄴ)으로 바뀌어 인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인절미가 공주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이 읽는 글에, 앞에서는 목천리 임씨댁에서 푸짐한 음식을 왕에게 진상했다고 해 놓고는 보자기를 걷으니 인절미가 가득했다고 했으니, 인절미 한 접시(광주리?)가 과연 왕에게 바치는 푸짐한 음식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또 왕이 시장한 참에 인절미를 입에 덥썩 넣었다는 표현은 왕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표현한 글이라 하기는 매우 곤란하지 않을까 싶고, 임절미가 인절미로 변화된 과정을 그렇게 문법적으로까지 설명할 필요 없이 처음에는 임절미라고 했으나 언젠가부터 인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 
  관광 안내문이 천하명문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겠으나 간결한 문체로 사실을 전하면서 예의도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오랫만에 공주 공산성에 다시 가서 인절미의 이름에 얽힌 유래를 알게 되었고, 호젓한 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고 왔으니 수명이 한 십년은 연장되었을 것이다.  
  여러분들께서도 공주에 갈 기회가 있거든 무령왕릉과 함께 공산성에도 꼭 들러 보기를 권한다.
  공산성은 도로가 잘 닦여 있고, 숲이 우거져 있어 매우 호젓하며, 공기도 매우 맑아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그리고 곳곳에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장소들도 많고, 아래로는 금강이 흐르고 있어 운치도 있으며, 내려오면 말꼬리가 느긋하고 인심 좋은 충청도 공주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