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윤여동 2012. 10. 19. 21:34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15년(A.D.427) 조를 보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고,

  장수왕 23년(A.D.435) 조를 보면,

  “위(북위)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빈번히 공격하니 연(북연)나라에서는 위험이 날로 절박하였다. 연나라 임금 풍홍이 ‘만일 사태가 위급하게 되면 동쪽의 고구려에 잠시 의탁하고 있다가 후일을 도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비밀리에 상서 양이를 우리나라에 보내 망명을 요청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24년(A.D.436) 조에는,

  “여름 4월에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랑성(白狼城)을 공격하여 이기자 왕이 장수 갈로맹광으로 하여금 군사 수 만명을 거느리고 연나라 사신 양이를 따라 화룡(和龍)에 가서 연나라 임금 풍홍을 맞아 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26년(A.D.438) 조를 보면,

  “왕이 풍홍을 평곽(平郭)에 있게 했다가 얼마 후에 다시 북풍(北豐)으로 옮겼다.

  풍홍은 본래 우리를 업신여겨 행정, 치안, 상벌 등에 관한 처리를 마치 자기 나라에서 하듯 하므로 왕이 곧 그 시종하는 사람들을 떼어버리고 그의 태자 왕인을 데려다가 볼모를 삼았다. 풍홍이 이를 원망하여 송 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자기를 맞아 주기를 요청하니 송 태조가 사신 왕백구를 보내서 그를 맞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를 치송하게 하였다. 왕이 풍홍을 남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싫어서 장수 손수, 고구 등으로 하여금 북풍에서 풍홍과 그의 자손 10여명을 죽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북연이 멸망하고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해 오자 장수왕은 처음에는 그 일행을 평곽성(平郭城)에 배치했는데, 풍홍은 자신이 나라를 잃고 오갈 데 없는 망명객 처지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황제인 양 계속 거들먹거리자 장수왕이 그의 거처를 다시 북풍성(北豐城)으로 옮기면서 시종들을 떼어버리고, 또 풍홍의 아들을 인질로 잡아 데리고 와 버리자 풍홍은 고구려에서 더 이상 망명생활을 계속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남쪽의 송나라(유송)에 사신을 보내 송나라로의 재망명을 타진하게 되고, 송나라에서는 풍홍의 망명요청을 받아들여 사신 왕백구를 고구려의 북풍으로 보내 풍홍을 송나라로 데려 가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장수왕은 북연왕 풍홍을 송나라로 보내주는 것이 후일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풍홍과 그 일족을 아예 죽여버리라 명령하게 되는데, 그 죽은 장소가 바로 북풍인 것이다.

  따라서 북연왕 풍홍과 그 가족들은 죽어 북풍 부근에 묻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풍(北豐)이라는 곳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호태왕비문 영락 5년(A.D.395) 조를 보면, 이때 광개토태왕이 비려를 정벌하고 개선할 때 양평도를 지나 역성, 북풍을 지나 귀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북풍이라는 지명이 언급된다.

  그런데 필자는 고구려의 황성(필자주 : 평양성 동쪽에 위치했다고 한다)을 지금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고, 풍홍이 처음에 머물렀던 평곽성이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이고,  이곳이 곧 고구려의 건안성(建安城)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양평이라는 곳은 지금 명13릉으로 유명한 창평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풍이라는 곳도 평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생각된다.

  북풍은 지금의 난평 북쪽 방향에 위치한 하북성 승덕시 풍녕현(豐寧縣) 의 봉산진(鳳山鎭)이 아닌가 싶다.   

 

[참고]

삼국지 권4 위서4 삼소제기 제4 정시 원년(A.D.240) 조를 보면,

“春二月 丙戌 以遼東 汶, 北豐縣民 流徙渡海, 規齊郡之西, 安, 臨菑, 昌國縣界 為新汶, 南豐縣 以居流民[요동군 문현, 북풍현 백성들을 옮겨 바다건너 제군(산동성)의 서쪽 안현, 임치현, 창국현의 경계에 신문현, 남풍현을 설치하고 살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옛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는 이때 문현, 북풍현의 유민들을 옮길 때 배를 타고 내려와 산동반도 서쪽 지금의 제남시 부근에 신문현과 남풍현을 설치하고 살게 하였다는 기록인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요동반도에서 발해해협을 건너 산동반도에 신문현과 남풍현을 설치하였다고 역사를 해석하고 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