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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윤여동 2013. 3. 16. 20:12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사기 흉노전을 보면,

  “진(秦)나라가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장성을 쌓아 호(胡)를 막았다”고 하였고,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진장성이다.

 

☆ 농서는 농산(隴山)의 서쪽지역으로서 지금의 감숙성 난주 부근을 말하고,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의 북쪽 유림시 부근을 말한다.

 

  “조 무령왕(B.C.325-299)이 또한 풍속을 바꾸어 호의 복장을 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북쪽으로 임호, 누번을 격파하고 장성을 쌓아 대(代)에서부터 음산(陰山)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기까지 새(塞)를 만들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며,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조장성이다.

 

☆ 옛날에는 양산은 황하의 북쪽에, 음산은 황하의 남쪽에 위치했었다고 하고, 운중은 산서성 북부 황하 동쪽 지금의 편관, 하곡 부근을 말하고, 안문은 안문관 부근. 대군은 대현 부근을 말한다.

 

  “그 후 연나라에 현장 진개가 있어 호에 볼모로 갔었는데 호가 그를 매우 신임했다. 돌아와 동호(東胡)를 습격하여 격파하니 동호가 천여리를 물러났다...............연나라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造陽)에서부터 양평(襄平)에 이르렀고,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하여 호를 막았다. 당시 관복을 입던 전국시대 일곱 나라 중에서 세 나라가 흉노와 접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연장성이다.

 

☆ 조양의 위치에 대하여 위소는 상곡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뒤에 진나라가 여섯나라(초연조위한제)를 멸하였고, 시황제가 몽념을 보내 10만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호를 공격하게 하여 하남 땅을 모두 빼앗아 하수(황하)를 따라 새를 만들고 하수변에 44개 현성을 쌓아 적수를 옮겨 이를 채웠다. 그리고 직도를 뚫어 구원에서 운양까지 이르렀고, 변경 산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계곡을 참호로 하고,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수리해서 쓰며, 임조(臨洮)에서 요동(遼東)까지 (장성을 쌓았는데) 만여리에 이르렀다”라고 기록함으로써 만리장성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 이것이 소위 진시황 때 쌓았다고 전하는 만리장성인데, 기록을 보면 이때 몽념은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 조장성, 연장성을 연결하고, 수리만 하였을 뿐 새로 쌓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사기 흉노전에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라고 기록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요동, 서쪽 끝은 임조라고 알고 있다.(현재는 가욕관이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기 권2 하본기 제2의 주를 보면,

  “태강지리지에 이르기를,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나라가 쌓은 장성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냥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만 기록하였는데,

  통전 권178 주군8 평주 노룡현 조를 보면,

  “진 태강지지에 이르기를, 진나라가 쌓은 장성은 갈석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시작점이 갈석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는 태강지리지의 기록을 원문대로 인용한 반면 통전은 같은 기록을 인용했으면서도 “진축(秦築)”을 삽입하여 갈석산에서 시작된 장성이 진나라가 쌓은 것이라고 하였다.

  사기 흉노전을 보면, 연장성이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쌓았다고 하였고, 진나라가 몽염으로 하여금 임조에서 요동까지 옛 장성을 수리했다고 하였기 때문에 기록대로라면 원래 진나라가 쌓았다는 만리장성은 농서, 북지, 상군을 경유하고, 안문관, 평형관, 자형관을 지나 갈석산까지  쌓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원래의 진장성에 조장성, 연장성 일부를 연결한 것까지를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통전은 몽염이 쌓은 진나라의 만리장성이 갈석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기 때문에 과연 진나라가 쌓은 만리장성이 요동양평에서 시작되었느냐, 갈석산에서 시작되었느냐 하는 논란을 불러 왔던 것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춘추전국시대 쌓았다는 진나라 만리장성은 농서의 임조에서 상군까지였다.

  그리고 조장성은 고궐에서 안문을 경유하여 대, 또는 갈석산까지였으며, 연장성은 진개가 고조선으로부터 1천여리를 빼앗아  갈석산에서 요동 양평까지 쌓은 장성이고, 그 안에 5군(요동군, 요서군,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갈석산에서 요동까지 쌓은 장성은 사실은 연나라가 쌓은 연장성이었다.

 

  그 땅이 원래는 고조선 땅이었으나 전국시대 연나라 진개가 그땅을 빼앗았고, 다시 그 땅을 연나라를 멸하고 진(秦)나라가 차지했다가,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漢)나라가 서자 그 땅은 다시 고구려의 땅이 되기도 하는 등 변화가 많았고, 후대에는 그곳이 연운 16주가 되기도 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 땅은 임자없는 땅이나 마찬가지로서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고, 누구나 탐내는 땅이었으므로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진 시황제가 몽염을 보내 쌓은 진 만리장성은 지금의 감숙성 난주 부근의 임조에서부터 요동 양평인 지금의 북경 부근까지였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연장성, 조장성을 수리하고 연결한 것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의 난주로부터  북경부근까지였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로서 천년간이나 헷갈렸던 진장성, 조장성, 연장성을 찾은 것이다.

 

☆ 요동을 지금의 요하 동쪽으로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나 이는 명 또는 청대에 지명의 교치로 인한 것이고, 포두 북쪽에도 장성의 흔적이 있어 지금 중국에서는 그곳을 진장성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시황제때 몽염이 쌓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진나라, 한나라 때 잠시 그 지역을 차지했을 때 쌓았던 새(塞)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