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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삼국사기 기록 속 을미년 국운

윤여동 2014. 12. 12. 06:48

윤여동설 - 삼국사기 기록 속 을미년 국운

 

 

 

B.C.26 신라 가을 8월 일식이 있었다.

 

A.D.155 신라 봄정월에 왕이 시조묘에 친히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사면하였다. 흥선으로 일길찬을 삼았다.

백제 봄 정월 그믐 병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10월 신라의 아찬 길선이 반란을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백제로 도망하여 왔다. 신라왕이 글을 보내 돌려달라고 청하였으나 보내지 않았더니 신라왕이 화가 나서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하여 왔으나 모든 성들이 나가지 않고 성을 굳게 지키니 신라 군사들이 군량이 떨어져서 돌아갔다.

 

A.D.335 고구려 봄 정월 나라 북쪽에 새로운 성을 쌓았다.

가을7월 서리가 내려 곡식이 죽었다.

백제 겨울10월 초하루날 을미에 일식이 있었다.

 

A.D.395 신라 가을8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군사를 내어 이를 실직벌판에서 대파하였다.

고구려 가을8월 왕(광개토왕)이 패수가에서 백제와 싸워 그들을 대파하고 8천여명을 사로잡았다.

백제 봄2월 혜성이 서북방에 나타났다가 20일 만에 사라졌다.

가을8월 왕(아신왕)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령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였더니 고구려왕 담덕(광개토왕)이 친히 군사 7천을 거느라고 패수가에 진을 치고 대항하여 싸우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여 죽은 자가 8천여명이었다.

겨울11월 왕(아신왕)이 패수전투에서 패한 것을 보복하려고 몸소 군사7천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서 청목령 아래에 모였는데, 때마침 큰 눈이 내려 병졸들이 얼어죽은 자가 많으므로 군사를 돌려 한산성에 와서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 호태왕비문에는 이해에 고구려 광개토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비려를 침공하여 염수까지 가서 3개부락 6-7백개영을 격파하고 셀수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비려는 지금의 내몽골 오란찰포 북쪽 찰합이우익후기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A.D.455 신라 겨울10월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므로 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다.

고구려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백제 개로왕의 이름은 경사이니 비유왕의 장자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어 (개로왕이) 왕위를 이었다.

 

A.D.515 고구려 겨울10월 위(북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A.D.575 신라 봄과 여름이 가물었다.

 

A.D.635 신라 당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황제의 부절을 가지고 와서 왕을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책명하여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하게 하였다.

영묘사가 낙성되었다. 겨울10월 이찬 수품과 용수를 보내 주와 현을 순무하였다.

 

A.D.695 신라 자월(음력11월)을 표준으로 삼아 정월로 삼았다.

개원으로 상대등을 삼았다.

겨울10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중시 원선이 나이들고 늙어 사직하였다.

서시장과 남시장을 설치하였다.

 

A.D.755 신라 봄에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망덕사 탑이 흔들렸다.

여름4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신년을 축하하였다.

가을7월 죄인들을 석방하고 늙고 병든이,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 들을 위문하고 곡식을 차등있게 나누어 주었다. 이찬 김기를 시중으로 삼았다.

 

A.D.815 신라 봄정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냈더니 헌종이 접견하고 차등있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여름5월 눈이 내렸다.

가을8월 초하루 기해일에 일식이 있었고, 서쪽 변방의 주와 군에 큰 기근이 들어 도적이 봉기하므로 군사를 출동시켜 토벌하였다.

큰별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 나타나 서쪽방향을 가리켰는데, 뻗혀진 빛의 길이가 6척쯤 되었고, 넓이가 두치쯤 되었다.

 

A.D.875 신라 봄2월 서울과 나라 동쪽 지방에 지진이 있었다.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가 20일 만에야 사라졌다.

여름5월 용이 왕궁 우물에 나타나더니 잠시 후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들면서 날아갔다.

 

A.D.935 신라 이해 11월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나라를 들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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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으로 을미년은 지진, 가뭄, 기근 등 천재지변이 많은 해였다. 잘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

2. 을미년은 전쟁이 일어난 적이 많은 해였으므로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3. 을미년은 외교관계는 좋은 해였다.

4. 을미년은 내부적으로 도적, 반란 등이 일어났던 해였으므로 미리미리 민심을 다독여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