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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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조선태조 이성계의 출생지 영흥(永興)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赤峰)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 2017. 12. 30. 21:50

윤여동설 - 조선태조 이성계의 출생지 영흥(永興)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赤峰) 부근 - 최초주장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赤峰市), 옹우특기(翁牛特旗) 일원은 옛날 옥저(沃沮) 땅으로서, 한사군(漢四郡) 때는 초기 현토군(玄菟郡) 지역이었고, 고구려 태조대왕 때는 고구려 땅이 되었고, 발해 때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했다. 고려 때는 그 남쪽 철령을 지나도록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때 고려는  천리장성을 최소한 두만강이나 그 북쪽 산맥이나 강을 따라 쌓지 못하고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남쪽(이곳이 원래의 철령이다)을 지나도록 들여 쌓았는데, 이는 이때 그 북쪽은 거란과 여진족이 차지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 나라 때는 조휘, 탁청이 영흥(화주) 이북 땅을 들어 바치자 원나라에서는 그곳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 1258-1356)를 설치하였고, 개원로(開元路, 開原路)에 속하게 했었는데,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내응함에 힘입어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탈환하여 동북면이 되었고, 그 땅은 이성계 가문의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되고, 결국 이성계는 그곳 동북면을 기반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그랬다가 도읍을 대륙의 개경으로부터 한반도 한양(현 서울)으로 옮기게 되고, 모든 대륙 역사를 한반도에 적용하게 되어 그 후 한반도에 살았던 조선 사람들은 대륙 역사를 잊어버리고 만다.

  무엇을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역사를 왜곡해야만 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이성계의 원래 출생지 영흥(永興)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赤峰市부근을 말하는 것이지, 한반도의 함경남도 영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계의 본관인 전주(全州) 역시 한반도의 전주가 아니라 지금의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전혀 모른 채 사서의 기록들을 한반도에 적용하여 역사를 해석하며 그 역사적 흔적들을 찾고 있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 고대역사에 있어서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지명비정에 관한 한 전부 엉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은 한반도 북쪽의 지금 요동이 아니라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고, 백제의 동북쪽에는 신라가 위치했었으며, 백제와 신라의 북쪽에는 고구려, 옥저, 맥, 동예 등이 위치했었기 때문이다.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륙역사를 숨기고 한반도 역사로 만들려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왜곡하여 놓은 것들을 사실을 밝혀보려 노력은 하지 않고, 앵무새 마냥 그대로 되뇌이고 있으니 엉터리가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