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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와 발해의 “책성(柵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 2018. 4. 29. 20:13

윤여동설 - 고구려와 발해의 책성(柵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고구려 6대 태조대왕 4(A.D.56) 조를 보면,

  “가을 7월 동옥저(東沃沮)를 쳐서 그 땅을 빼앗아 성읍을 만들고, 동쪽으로는 창해(滄海)까지, 남쪽으로는 살수(薩水)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확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46(A.D.98) 조를 보면,

  “3월 왕이 동쪽으로 책성(柵城)을 순행하다가 책성 서쪽 계산에 이르러 흰 사슴을 잡았다. 다시 책성으로 와서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어 술을 마시면서 책성 관리들에게 물품을 차등 있게 하사하고 그들의 공적을 바위에 새겨놓고 돌아 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50(A.D.102)년 조를 보면,

  “가을8월 사신을 보내 책성(柵城)“ 백성들을 위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태조대왕이 이 책성(柵城) 지역을 매우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고,

 

  또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국토는 515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 호주, 발주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 현주, 철주, 탕주, 영주, 흥주의 6개주를 다스린다.

  예(濊),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하고, 경주, 염주, 목주, 하주의 4개주를 다스린다.

  옥저(沃沮)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주, 정주, 초주의 3개주를 다스린다.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鴨淥府)이며, 신주, 환주, 풍주, 정주의 4개주를 다스린다...................

 

  용원(동경)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길이고,

  남해(남경)는 신라길이며,

  압록(서경)은 조공길이고, 장령은 영주길이며, 부여(동부여)는 거란길이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태백산의 토끼, 남해의 다시마(건포), 책성의 메주(柵城之豉), 부여의 사슴, 막힐의 돼지, 솔빈의 말, 현주의 베, 옥주의 솜, 용주의 명주, 위성의 철, 노성의 벼, 미타호의 붕어이다. 과일로는 환도의 오얏과 낙유의 배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편을 보면,

  “본래 예, 맥의 땅이었다(本濊貊之地)”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강릉대도호부의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예국이었다(本濊國). 한 무제 원봉2년에 장수를 보내 우거를 토벌하고 4군을 정했을 때 임둔군(臨屯郡)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춘천도호부 조를 보면, " 본래 맥국이었다(本貊國)"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당서 발해전에서 말한 예(濊)와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하였다는 기록과 상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옛날 태조대왕이 그토록 중요시 했던 책성(柵城)”이었으며, 발해 때의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였던 책성부(柵城府)”는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한반도의 강원도 지역이 옛날에는 책성부였을까?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반도 식민사관에 찌들어 태조대왕 때 고구려가 실제 지금의 어디에 도읍하고 있었는지, 동옥저(東沃沮)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예(濊)와 맥()이 실제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는, 동옥저는 한반도의 함흥 부근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책성을 두만강 너머 혼춘(훈춘) 지역을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하며, 예맥(濊貊) 또는 예(濊 : 동예)를 한반도의 강원도 일원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고구려 태조대왕 때의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國內城)은 한반도 북쪽의 압록강변 길림성 집안(集安)이 아니라 지금의 북경 북쪽 연경현 영녕진(永寧鎭)을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를 이어 일어난 발해국(渤海國)은 지금의 대흥안령(大興安嶺) 파림좌기 등을 중심으로 존속했던 나라였지 한반도 동북쪽 두만강 너머에 위치했던 나라가 아니었으며,

  신라는 한반도 경상도지역에 위치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천년왕조를 이룬 나라였다.[필자주 : 한반도 경상도 지역은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대륙에서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잡히면 죽게되는 상황에 처하자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 왕국이었다]   

  그리고 동옥저(東沃沮) 역시 지금의 내몽골 적봉(赤峰), 옹우특기(翁牛特旗)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고,

  예(濊)와 맥(濊貊)은 그 동쪽 지금의 고륜기(庫倫旗), 능원(凌源), 영성(寧城)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다.

  따라서 고구려 태조대왕이 순행했던 책성(柵城)”이란 지금의 내몽골 통요시(通遼市), 나만기(奈曼旗), 고륜기(庫倫旗)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발해의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역시 지금의 내몽골 통요시(通遼市), 나만기(奈曼旗), 고륜기(庫倫旗) 부근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발해국에서는 책성(柵城)지역에 설치되었던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일본으로 가는 길[日本道]이라고 했던 것이고,

  내몽골 적봉(赤峰), 옹우특기(翁牛特旗) 일원에 설치되었던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를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있던 신라로 가는 길[新羅道]이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의 북경 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었다. 신라는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도읍하고 천년왕조를 이었고, 고구려의 졸본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을 말하는 것이고, 국내성은 북경시 연경현 영녕진을 말하는 것이며, 환도성은 북경 북쪽 회유 발해진을 말하는 것이고, 평양성은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을 말하는 것이며, 고대의 왜국(일본)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