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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김유신의 출생지 만노군(萬弩郡)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8. 10. 26. 20:22

윤여동설 - 김유신의 출생지 만노군(萬弩郡)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보면,

  “처음에 서현(김유신의 아버지)이 길을 가다가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필자주 : 손녀딸이 아닐까?) 만명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그에게 눈짓을 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하게 되었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만명을 데리고 함께 가려하니 숙흘종이 자기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 만명을 집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 집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자가 놀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만명이 도망쳐 곧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가버렸다.

  서현이 경진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 꿈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얼아 안 되어 태기가 있어 스무달 만에 유신을 낳으니 이때가 진평왕 건복 17년이오, 수 문제 개황 15년 을묘(A.D.595)였다....................이름을 유신(庾信)이라 하였다. [만노군(萬弩郡)은 지금의 진주(鎭州, 필자주 : 진천의 옛 이름)인데, 유신의 태를 묻은 높은 산을 지금도 태령산(胎靈山)이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김유신의 출생지 만노군(萬弩郡)과 진주(鎭州)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 김유신이 스무달(20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 만명이 서현과 혼인하겠다고 하면서 혹시 반대에 부딪칠까봐 임신했노라고 뻥을 쳤던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때 임신했던 것이 아니라 만노군으로 도망쳐서 만노군에 있을 때 김유신을 입태했기 때문에 처음 임신했다고 뻥칠 때부터 계산하여 스무달만에 김유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남겨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진천현(鎭川縣)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고구려 금물노군(今勿奴郡)인데, 일명 만노군(萬弩郡)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천의 옛 지명이 만노군이었음을 알 수 있고, 고려 초에 진주(鎭州)로 고쳤다고도 기록되어 있어 고려 초에는 진주(鎭州)라고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한반도 충북 진천(鎭川)에 비정하여 해석함으로써 한반도 진천이 곧 만노군이었고, 그곳에서 김유신이 출생했다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신라의 건국지는 한반도의 경북 경주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이었고,

  백제의 북한산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도산(都山)을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이 옛 고조선의 왕검성(王儉城)이었다.

  우리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과 가야는 한반도에서 건국되고, 존속했던 나라가 아니라 발해 북쪽 패수(현 난하)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나라들이었다.

  따라서 김유신의 출생지 만노군(萬弩郡)도 한반도 충북 진천이 아닌 발해 북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찾고 보니 지금의 하북성 청룡하의 도림구수고 부근으로 비정할 수 있었다.

  김유신은 한반도 충북 진천(鎭川)에서 출생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청룡하(靑龍河, 필자주 : 지금의 청룡하가 옛 백제의 웅천이었다)의 도림구수고(桃林口水庫) 부근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대륙의 기록들 모두를 한반도로 가져와 한반도 지명에 비정하여 해석하고 있으니 한반도에서 그 확실한 역사적 현장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