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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민족의 예언서 정감록 속 십승지(十勝地) “속리산(俗離山) 우복동(牛腹洞)”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22. 9. 8. 22:26

윤여동설 한민족의 예언서 정감록 속 십승지(十勝地) “속리산(俗離山) 우복동(牛腹洞)”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하북성 진황도시 석문채진(石門寨鎭)에 있는 고려성(高麗城) 성벽]

 

  [옛 속리산(俗離山)이었던 지금의 진황도 조산(祖山)

 

[진황도 조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석문채를 지나는 석하(石河)와 멀리 보이는 조산(祖山)]

 

 

  많은 사람들은 난세에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전설 속 십승지(十勝地, 十勝之地)가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하여 한반도의 어디어디가 십승지지 중 어느 곳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고장 또는 자기고향이 십승지지 중 하나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는 속리산(俗離山) 우복동(牛腹洞)”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속리산(俗離山) 동쪽에서 그곳을 찾으려 하는 경우와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고조선, 삼한, 삼국은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발해 북쪽 북경, 하북성 북부, 요녕성 서부, 동내몽골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고, 고려 역시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고조선의 왕검성과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承德市)였고,

  신라의 서라벌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으며,

  백제의 웅진은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盧龍縣)이었고, 마지막 도읍 사비는 당산시 난현(난주)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 역시 한반도의 개성이 아니라 하북성 관성현(寬城縣)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주 :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한반도를 고집한다면, 우리 상고, 고대사의 진실은 영원히 밝힐 수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 이성계의 조선(朝鮮)이 그 대륙고려 땅을 차지하고 건국된 후 그곳을 떠나 한반도로 옮겨 온 후, 그 대륙의 지명과 연혁을 모두 한반도로 옮겨 교치(僑置)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한반도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중심지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조선시대 사람들도 십승지를 한반도에서 찾으려 하게 되었던 것인데, 사실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한 장소였다.

 

  십승지지 중 가야산(伽耶山) 남쪽 만수동(萬壽洞)”은 요녕성 호로도시에 있는 대홍라산 남쪽 벌판을 말하는 것이었고,

 

[예로부터 가야산 정상에는 소머리 형상이 나타난다고 전해오는데, 한반도의 가야산 정상에는 소머리 형상이 없다. 그러나 발해 북쪽 요녕성 호로도 대홍라산에는 산 정상에 위 사진처럼 소머리 형상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곳이 진짜 가야산 임을 알 수 있고, 십승지 가야산 만수동이 바로 이 산의 남쪽 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속리산(俗離山) 동쪽 우복동(牛腹洞)”은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조산(祖山) 동쪽에 위치한 지금의 진황도 석문채진(石門寨鎭)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속리산(俗離山)은 지금 진황도 조산(祖山)의 옛 이름이었다.

  진황도 석문채에는 지금 그곳 주민들이 고려성(高麗城)”이라 부르는 허물어진 옛 성터가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그 옛 성을 왜 고려성이라고 부르는지 이유는 알지 못하고 있었고, 다만 옛날부터 고려성(高麗城)이라고 불러왔다고만 대답했다.

  이렇게 역사는 이어지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는 것일러라.

 

옛날 신라 42대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지고 왔으므로 왕이 지리산(地理山)에 심게 했고, 청학동(靑鶴洞)이 있다고 전해지는 지리산(智異山)은 지금의 발해 북쪽 진황도 창려의 갈석산(碣石山)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