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강동6주 2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이후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으로 화주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쌓아 거란과 여진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서기 1018년 12월 10일(무술일) 거란의 부마 소손녕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하자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8천3백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안주)에 주둔시켜 거란의 침공을 방어하게 한다.    그리하여 강감찬은 다시 기병 1만2천명을 뽑아 흥화진(興化鎭)에 매복시키고, 또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큰 냇물을 막아 물을 가두어 두고 적을 기다렸다가 적이 이르자 물을 터놓아 거란군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복병을..

카테고리 없음 2011.03.25

윤여동설 - 고려의 강동 6주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강동 6주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서기 993년 고려 성종 12년에 거란의 소손녕이 80만 대군으로서 고려를 침공한다.   앞서 왕건이 거란에서 보낸 낙타를 만부교에서 굶어 죽게 했고, 그 후 다시 거란에서 사신을 보내 국교 맺기를 요청했으나 고려는 아예 상대를 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고려가 거란을 신의 없고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란이 침공해오자 고려에서는 박양유를 상군사로 삼고, 서희를 중군사로,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서쪽 국경에 주둔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고, 왕 성종도 개경에서 서경으로 왔다가 안북부로 나아가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거란이 봉산군을 쳐서 고려의 선봉군사인 윤서안 등이 사로잡히게 된다.   성종이 서희..

카테고리 없음 200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