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삼국사기는 왜 최리를 낙랑왕이라 기록했을까? - 최초주장 [청나라 때의 피서산장(열하행궁) 전경 그림인데 성 내부의 면적이 170만평이나 되는 곳으로서 이곳이 바로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옛날 고조선의 단군들과 고구려의 왕들은 이렇듯 제왕이 살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멋진 곳에서 살았다.] 우리 삼국 역사를 논할 때 항상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곧 "낙랑(樂浪)"인데, 이는 낙랑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는 우리의 고대사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낙랑의 어원은 잘 알 수 없으나 "즐거울락(樂) 물결랑(浪)" 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위치가 바다(혹은 큰 강)를 끼고 있는 곳으로서 큰 파도가 치는 것이 장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이게 되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