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내몽골 화덕 2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와 염수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조를 보면, “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세 개 부락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했다.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北豐)을 거쳐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정확히 밝힌 사람은 없었다. 학자들은 비려가 거란의 한 일파였다고 알..

카테고리 없음 201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