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발해의 등주침공 2

윤여동설 - 발해국 장문휴가 침공했던 등주(登州)는 지금의 산동반도가 아니라 쌍성 부근에 위치했던 등주(登州)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 장문휴가 침공했던 등주(登州)는 지금의 산동반도가 아니라 쌍성 부근에 위치했던 등주(登州)였다 - 최초주장    구당서 발해말갈전을 보면,   “개원 20년(A.D.732) 무예(발해 무왕)가 그의 장수 장문휴를 보내어 해적을 거느리고 등주(登州)자사 위준을 공격하였다. 현종은 문예를 파견하여 유주(幽州)에 가서 군사를 징발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는 동시에 태복원외경 김사란으로 하여금 신라에 가서 병사를 징발하여 발해국의 남쪽경계를 치게 하였다. 마침 산이 험하고 날씨가 추웠으며, 눈이 한길이나 내려서 병사들이 과반이 얼어 죽어 전공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발해국이 등주(登州)를 침공했고, 당나라에서는 그에 대하여 보복하려 하다가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18.08.26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말갈 발해(발해국)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의 임자년:712)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渤海)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719)에 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가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해동(海東)의 큰 나라가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 15부(十五府), 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 천성 초년에 거란(契丹)이 이곳을 쳐서 깨뜨렸..

카테고리 없음 2009.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