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칠숙과 비담은 왜 난을 일으켰을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진평왕 53년(A.D.631) 조를 보면, “여름 5월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반역을 도모하는 것을 왕이 알아채고 칠숙을 잡아 동쪽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고, 그의 9족을 잡아 죽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까지 갔다가 처자들을 보고 싶어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총산까지 돌아와서 나무꾼 한명을 만나 옷을 벗어 바꾸어 입고 나무짐을 지고 몰래 집에까지 왔다가 잡혀서 형벌을 받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평왕은 칠숙을 매우 혹독한 형벌로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벌 중에서도 9족을 멸한다는 것은 왕조를 무너뜨리려 한 대역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로서 일가친척이라고 생긴 사람은 사돈에 팔촌까지도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