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정람기 3

윤여동설 -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夫餘城, 옛 예성)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夫餘城, 옛 예성)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으로 추정되는 원 상도성터]     아직까지 부여(동부여)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없고, 따라서 그 도읍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 역시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비록 확실하지는 않다하더라도 그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을 찾아 보는 것도 역사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후한서 부여국(동부여)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濊)의 땅이었다” 라고 ..

카테고리 없음 2015.03.16

윤여동설 - 주몽이 동부여에서 졸본(홀본)으로 간 남하로 찾기

윤여동설 - 주몽이 동부여에서 졸본(홀본)으로 간 남하로 찾기 [지금 중국에서는 원 상도유지(원 상도성터)라 하고 있는데 이곳은 옛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은 22세 때에 동부여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자 그곳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엄호수(호태왕비문에는 엄리대수라고 하였다)를 건너 졸본(홀본)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아들이 없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공주와 혼인을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그후 주몽이 부여(동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 봄2월에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고, 위서 고구려전에는 “주몽은 오인, 오위 등 두 사람과 함께 부여(동부여)를 떠나 동남쪽으로 도망하였다”라고 하였다. 두 기록이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친 방향을..

카테고리 없음 2011.06.17

윤여동설 -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 만번한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과 전국시대 연나라의 국경이었던 만번한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 - 최초주장     삼국지 한(韓) 전을 보면 위략(魏略)의 기록을 주로 달아 놓았는데, 그 기록을 보면,『위략에 이르기를,  옛날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가 있었다. (昔箕子之後 朝鮮侯)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동쪽을 공략하려 하였는데,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주 왕실을 존속시켜주기 위하여 거꾸로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다가 그 대부인 예가 간하여 중지하고, 예로 하여금 서쪽의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나라도 중지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후에 (조선후의) 자손들이 점점 교만하고 포학해져 연나라가 드디어 장수 진개를 보내 그 서쪽을 공격하여 2천여 리(필자주 : 사기 흉노전에는 1천여..

카테고리 없음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