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주류성 2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성이었던 주류성과 임존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성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조를 보면, “무왕의 조카 복신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중 도침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 웅거하며 반하였다. 옛 왕의 아들로서 왜국에 볼모로 갔던 부여풍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으니 서북부에서 모두 호응하매 군사를 이끌고 사비 도성에 있는 유인원을 포위하였다. 당나라에서 조서를 내려 유인궤로서 검교대방주자사를 삼아 왕문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군사를 적당하게 발동시켜 유인원을 구원하게 하니........(중략).........인궤가 군사를 엄숙하게 통제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여 오므로 ..

카테고리 없음 2014.10.04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백제는 서기 660년 7월 18일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고 9월 3일에 왕과 태자, 왕자 ,장군, 대신 등 98명과 백성 1만 2천명이 당나라 장안으로 끌려가게 되자 좌평 복신이 중심이 되어 주류성을 거점으로 삼고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당나라에 끌려갔던 의자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0월에 이르러 복신은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 왜국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일본서기에는 부여풍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니 풍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게 되고, 왜국에서는 군사 5천으로 호위하게 하여 부여풍을 백제로 호송한다. 복신 등은 부여풍이 돌아오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본격적으로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왜국에서..

카테고리 없음 200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