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죽령 서북쪽 500리 땅 2

윤여동설 -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은 죽령(竹嶺)과 철령(鐵嶺) 사이의 땅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은 죽령(竹嶺)과 철령(鐵嶺) 사이의 땅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조를 보면,   “11년임인(A.D.642) 가을7월 백제왕 의자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지방의 40여개 성을 쳐서 빼앗아 갔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党項城)을 빼앗아 당 나라로 가는 길을 끊으려고 도모하므로 왕이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어 태종에게 급한 사정을 보고하였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大耶城)을 쳐서 함락시키니 도독 이찬 품석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이 싸움에서 죽었다.   겨울에 왕이 백제를 쳐서 대야성 전투의 보복을 하고자 즉시 이찬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처음에 대야성이 패하자 도독 품석의 아..

카테고리 없음 2019.05.26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 선덕여왕 11년(A.D.642)에 백제의 침공을 받아 신라의 대야성이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대야성 도독인 김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가 백제군에 잡혀 죽게 되는데, 이때 죽은 고타소가 곧 김춘추의 첫딸이었다. 고타소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춘추는 너무도 놀라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고 이때 백제를 멸망시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죽은 딸 고타소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때 고구려 보장왕이 말하기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다. 네가 만일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어 주겠다” 고 했다는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