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하북성 당산시 2

윤여동설 - 후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후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백제가 멸망한지 230여 년이 지난 서기 892년에 이르러 견훤이 백제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후백제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후백제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당연스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가 신라의 서쪽인 옛 진번군 남쪽 땅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 백제의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 평양성이 옛 왕검성이었다면 우리 역사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 사서들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카테고리 없음 2007.11.25

윤여동설 - 백제의 22첨로는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백제의 22첨로(檐魯)는 어디를 말하는가?    우리가 "담로"라고 읽고 있는 글자는 나무목변(木)에 "이를 첨(詹)" 자로서 집의 처마라는 의미의 "처마첨(檐)"자이지 담자가 아니다. 따라서 "첨로"라고 고쳐 읽는 것이 옳다.   처음에 어느 학자가 글자형태가 비슷한 처마첨(檐)자와 멜담(擔)자를 혼동하여 첨로를 담로라고 잘못 읽었고, 그후 어느 역사학자도 옥편을 찾아 확인해 보지 않은 채  앵무새 마냥  계속해 담로라고 되뇌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 당장 옥편을 찾아 확인해 본다면 필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양서 백제 전을 보면,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치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

카테고리 없음 200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