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예(濊)와 동예(東濊)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몰랐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5잡지 제4명주(溟州) 조를 보면, “명주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하슬라라고도 한다)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쪽 경계에 있는 명주는 대개 예(濊)의 옛 땅’이라 하였으니 이전 사서에 ‘부여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사기 찬자들은 부여(동부여)가 예의 땅을 차지했다는 후한서 부여국전이나 삼국지 부여전의 기록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은 예와 동예의 위치변동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는 예가 원래부터 신라의 북쪽 명주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