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개경 4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이후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으로 화주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쌓아 거란과 여진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서기 1018년 12월 10일(무술일) 거란의 부마 소손녕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하자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8천3백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안주)에 주둔시켜 거란의 침공을 방어하게 한다.    그리하여 강감찬은 다시 기병 1만2천명을 뽑아 흥화진(興化鎭)에 매복시키고, 또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큰 냇물을 막아 물을 가두어 두고 적을 기다렸다가 적이 이르자 물을 터놓아 거란군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복병을..

카테고리 없음 2011.03.25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의 오기이다]로부터 동남방[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 고 하였으며, ☆ 삼국사기 찬자들이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통전의 기록이란 통전 권186 변방2 동이하 고구려 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朱蒙棄夫餘 東南走渡普述水 至紇升骨城 遂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주몽이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서 성씨를 삼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10.06.28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과 조선의 개국 그리고 한양천도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과 조선의 개국 그리고 한양천도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이성계는 1361년 10월에 독로강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공민왕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홍건적의 침입 때는 사병 2천을 이끌고 개경에 맨 먼저 입성했다. 또한 고려가 1258년 원나라에게 빼앗겼다가 1356년에 탈환한 쌍성총관부를 1362년 2월에 이르러 원나라가 재탈환하기 위하여 여진장수 나하추로 하여금 수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려를 침입하자 공민왕은 동북면 도지휘사로 하여금 그를 막게 했으나 계속 패배하자, 7월에 이성계를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하여 나하추를 막게 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침공군을 전멸시켰고 나하추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친 후 원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명나라에 투항해야만 했다. 이후 이성계는 왜..

카테고리 없음 2007.10.27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이글은 윤여동 밝힘 "고려와 조선 역사의 특급비밀" 책에서 발췌한 것임] 송나라 휘종 때 사람인 서긍이 서기 1123년 사신 일행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의 위치에 대하여, “고려는 남쪽은 요해, 서쪽은 요수까지이고, 북쪽(사실은 서북쪽)은 거란 옛 땅, 동쪽(사실은 동북쪽)은 금나라와 접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과 같이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와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나라 수도(당시 송나라의 도읍은 개봉이었다)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에서 육로를 거치..

카테고리 없음 200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