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구려신성 2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 최초공개 우리 고대역사에서 아직까지 그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하지 못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고구려 “신성(新城)”이다. 고구려의 동북쪽이라고도 하고, 북쪽이라고도 하고, 서쪽이라고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성(新城)은 고구려 13대 서천왕(재위 : 270-292) 대에 이미 축성되어 있던 성이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서천왕은 276년 4월에 신성으로 가서 무려 4개월이나 머무르며 사냥을 하기도 했고, 또 288년에는 4월부터 11월까지 무려 7개월간이나 그곳 신성에 머무르다가 평양성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성은 왕이 수개월을 머무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카테고리 없음 2020.05.31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3대 서천왕 조를 보면, “7년(A.D.276) 여름4월 왕이 신성[新城 혹자는 말하기를 신성은 나라 동북에 있는 큰 진이라 한다]에 가서 사냥을 하다가 백록을 잡았다. 가을8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19년(A.D.288) 여름4월에 왕이 신성에 갔다. 겨울 11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14대 봉상왕 조를 보면, “2년(A.D.293) 가을8월에 모용외가 와서 침노하였다. 왕이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까지 갔는데 모용외가 왕이 달아난 것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거의 잡히게 되매 왕이 두려워하였다. 이때에 신성성주인 고노자가 기병5백을 거느리고 나와서 왕을 영접..

카테고리 없음 20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