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운 최치원 4

윤여동설 - 고운 최치원이 살았던 진짜 가야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운 최치원이 살았던 진짜 가야산의 위치 - 최초공개 [가야산 산 정상 부근에는 소머리 형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호로도 북쪽 대홍라산 정상에는 소머리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그라미 속이 소머리처럼 보이시나요?] [가야산 해인사로 추정되는 대홍라산 천연사] [십승지 가야산 남쪽 만수동은 둘레가 200리라 하였다 : 지금의 발해북쪽 요녕성 호로도시 일원]

카테고리 없음 2019.10.19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有唐新羅國故知異山雙谿寺 敎諡眞鑑禪師碑銘(유당신라국고지리산쌍계사 교시진감선사비명)을 보면, 『선사의 법휘는 혜소(慧昭)이며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그 선조는 한족(漢族)으로서 산동(山東)에 살았는데,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요동)를 정벌할 때 많은 군사들이 고구려군에게 죽자 항복하여 변방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나라가 4군(요서군, 우북평군, 어양군, 상곡군을 말하는 듯)을 차지하자 (선사의 선조는) 지금의 전주 금마사람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감선사의 선조는 한족이었고, 원래 산동(지금의 산동성) 출신이었으며,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 중에 항복하여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

카테고리 없음 2013.08.01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가야산 정상 부근에 나타나는 소머리 형상] 가야산 해인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40대 애장왕 3년(A.D.802) 조에 “8월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해인사가 창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0여년 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 경남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가 바로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가야산 해인사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원래 한나라 때의 낙랑 부근에서 건국된 나라였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이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에 관한 기록은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할 수 있게 된다. 즉 원래의 가야산..

카테고리 없음 2009.07.03

윤여동자료 - 고운 최치원의 토황소격문(격황소서) 번역문

윤여동자료 - 천하명문으로 알려진 최치원의 토황소격문(檄黃巢書) [고운 최치원선생 초상]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중국에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나아가 있던 신라 사람 최치원은 그 토벌총사령관 고변의 휘하에 종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변은 이때 최치원으로 하여금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격문을 짓도록 하였는데, 이 격문이 바로 천하명문으로 알려진 "토황소격문(檄黃巢書)"이다. 황소가 이 격문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는 일화가 전할만큼 뛰어난 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학창시절 토황소격문이 신라 사람 고운 최치원이 지었고, 천하 명문이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정말로 그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시문집..

카테고리 없음 2008.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