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궁예 3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지 철원(鐵原) 북쪽 풍천원(楓川原)과 피살지 부양(斧壤)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지 철원(鐵原) 북쪽 풍천원(楓川原)과 피살지 부양(斧壤)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궁예열전을 보면, 궁예는 철원(鐵原)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였고, 강역도 상당히 넓었었으나 폭정을 일삼다가 왕건과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반정을 일으키자, 미복으로 갈아입고 산 속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안 되어 부양(斧壤, 필자주 : 부양(斧壤)이란 그곳의 지형이 도끼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생각된다) 백성들에게 잡혀 살해당하였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철원도호부 고적 조를 보면,    “풍천원(楓川原)은 궁예가 도읍했던 곳으로서 철원도호부의 북쪽 27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평강현(平康縣) 건치연..

카테고리 없음 2020.06.22

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 최초주장    우리 역사상 여자가 왕위에 오른 나라는 신라 뿐으로서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세 여왕 중 유독히 진성여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좋지 않게 전해져 지금도 진성여왕은 신라시대의 난잡했던 여왕으로 인식되고 있고, 결국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왕으로 치부되고 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 딸로서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고, 그 언니였던 천명공주가 진골이었으며 진지왕의 장자였던 용수에게 시집을 갔던 관계로 진평왕은 성골인 둘째 딸 덕만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때 김유신이라는 용장을 얻게 되어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고,..

카테고리 없음 2008.02.15

윤여동설 - 궁예왕의 나라 태봉국 - 사라진 흔적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사라진 흔적 궁예왕의 나라 태봉국 - 최초주장 [궁예의 도읍 철원 풍천원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평천] 삼국사기 열전 궁예 전을 보면, "궁예는 신라 사람이니 성은 김씨요, 아버지는 47대 헌안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혹자는 궁예가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궁예가 신라 왕자 신분이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그의 아버지가 헌안왕인지 경문왕인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기에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정이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앞서 난을 일으켜 43대 희강왕을 죽게 하고 왕위에 오른 44대 민애왕을 김양, 장보고 등이 합심하여 제거하고 45대 신무왕을 세웠으나 재위 6개월만에 등창이 나서 죽..

카테고리 없음 2007.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