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노룡두 해신묘 2

윤여동설 -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땠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땠을까? - 최초공개 [죽어 용이 되었다고 전해져 오는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 : 진황도 산해관 해신묘의 해신상]   [산해관 노룡두 해신묘 전경]    삼국을 통일하여 신라의 강역을 넓혔던 신라 문무왕의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떠했을까?   신라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으로서 아버지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명왕후 김문희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그에 대하여 "외모가 영특하게 생겼고, 총명하고도 지략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626년에 김춘추의 장자로 태어나 태종무열왕 2년(A.D.655)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60년에 김유신을 이끌고, 당나라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 6월에 그 아버지 태종무열..

카테고리 없음 2019.11.16

윤여동설 - 한반도 동해 감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릉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동해 감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릉이 아니다 - 최초주장    서기 681년 6월 문무왕은 죽음이 임박해지자 자신이 죽거든 장례를 호화롭게 치르지 말 것이며, 무덤도 커다랗게 만들지 말고, 서역 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간단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하고는 7월 초하룻날 죽게 된다.  그리하여 그 아들인 신문왕은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동해구의 큰 돌 위에 장사 지냈는데,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바위를 대왕석이라고 불렀고, 신문왕은 문무왕이 동해 바닷가에 짓다가 미처 완공하지 못한 감은사를 완공하여 아버지인 문무왕의 능을 수호하고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조치한다.   그런데 그 다음해 5월 초하루에 해관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에 작은 산..

카테고리 없음 2008.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