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경 4

윤여동설 - 조경일록 속의 백두산은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조경일록 속의 백두산(白頭山)은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아래 글은 조선 인조 때 사람인 잠곡 김육 선생이 명나라의 도읍인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쓴 일기인 “조경일록(朝京日錄)” 중 일부로서 북경을 향하여 갈 때의 진황도 산해관에서 북경 통주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때 잠곡은 지금의 한반도 서울을 출발하여 육로로 평양에 도착한 후 석다산에서 배로 갈아타고 연안항로를 따라 요동반도를 돌아 요녕성 금주(錦州) 부근에 도착하여 다시 육로를 이용하여 서쪽으로 흥성, 수중을 지나 산해관을 통과하고, 진황도시, 심하, 유관, 무령, 쌍망을 지나고, 노룡을 지나 난하를 건너 풍윤, 옥전, 계현, 삼하, 통주를 지나 북경에 도착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돌아올 때는 갈 때의..

카테고리 없음 2010.04.23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과 연경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북평은 옛날 중국 세력들이 서안이나 낙양 등에 도읍하고 있을 때 그 동북쪽인 하북성 평원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부터 선비족인 연나라가 차지하고 도읍을 하게 되어 연경(燕京)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세력들이 흥기하여 남하한 후 연경을 차지하고  도읍을 건설했는데, 요나라는 남경석진부라 했고, 금나라는 중도대흥부라 했으며, 원나라는 대도라 했고, 후일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을 건설하고 “북경순천부”라 명명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경”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09.09.22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北京)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위 : 지금 중국에서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에 있는 위 옛 성터를 원나라의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 한다]  [위 : 중국에서 원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고 하는 곳의 발굴된 현장모습인데, 사실 이곳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옛 황룡국의 도읍성터이다][좌표 동경114도37분16초 북위41도17분34초]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나라의 대도(大都)가 지금의 중국 북경(베이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중도(中都)가 북경이 아닌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700리쯤 떨어져 있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며, 지금 “원 중도유지(元 中都遺址, 가로세로 각 550m..

카테고리 없음 2009.09.14

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옛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어느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쇠약해져 옛날부터 도읍이 위치하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이웃나라에게 빼앗기고 지도층과 일부 백성들이 멀리 변두리 땅으로 옮겨가 그곳에 새로이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유지해 왔고 이제는 강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옛날에 빼앗긴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회복해야할 땅이라고 하면서 후손들에게 그 땅의 역사까지를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한 이웃 나라에서도 그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나라는 그 땅의 역사를 놓고 다투게 된다.  한편은 역사의 정통성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니 그 땅의 역사는 당연..

카테고리 없음 2009.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