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불내성 2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의 환도성 침공로와 동천왕의 파천로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의 환도성 침공로와 동천왕의 파천로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가을8월 위(魏)나라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현토(玄菟)로 나와서 침입하였다.   왕이 보․기병 2만으로 비류수(沸流水) 상류에서 맞받아 쳐서 적군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다시 군사를 이끌고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싸워 적군을 쳐부수어 또 3천여 명을 죽이고 붙잡았다. 왕이 모든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위나라의 많은 군사가 도리어 우리의 적은 군사만도 못하도다. 관구검은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에는 그의 목숨이 나의 손아귀 속에 있도다’하고 곧 철기군 5천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쳤다.   관구검이 ..

카테고리 없음 2010.06.21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 기공비 비편이라 하는 것은 관구검비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구검기공비 비편이라 하는 것은 관구검비가 아니다 - 최초주장 서기 1906년 길림성 집안 판석령에서 도로공사를 하다가 손바닥 크기보다 조금 큰 비편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 비편에는 "正始三年高句驪反/ 督七牙門討句驪五/ 復遣寇六年五月旋/ 討寇將軍巍烏丸單于/ 威寇將軍都亭侯/ 行裨將軍領"이라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용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 비편 중의 "정시 3년에 고구려가 반했다"는 기록을 보고는 이 비편이 위나라 관구검기공비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말들하고 있다. 이는 정시 3년에 고구려의 동천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침공했고, 정시 5년에 관구검이 격파했다"는 삼국지나 양서의 기록과 정시 7년에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해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장군 왕기를 시켜 동천왕..

카테고리 없음 2008.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