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사비난현설 3

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나당연합군의 백제침공로가 나타나는데, 이때 신라군의 진격로 중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이 있다. 기록을 보면, 『여름 5월 26일에 왕이 유신, 진주, 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금성)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萊州 : 지금의 산동반도)로부터 떠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필자주 : 서북쪽의 오기이다)으로 왔다. 6월 21일에 왕이 태자 법민으로 하여금 병선 1백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게 하였다. 소정방이 법민에게 말하기를 “나는 7월 10일 백제에 도착하여 (사비의) 남쪽에서 대왕의 군사와..

카테고리 없음 2014.09.12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백제26대 성왕은 서기 538년 봄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국호까지도 남부여(南扶餘)로 바꾼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537년까지로 끝나고, 538년부터는 남부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인데, "남부여"라는 국호는 "옛 졸본부여의 영광을 남쪽 땅에 재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만 잠깐 언급했을 뿐 실제 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성왕은 왜 이때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 때문에 도읍인 웅진이 위험하다고 보고 더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

카테고리 없음 2008.10.12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백제는 서기 660년 7월 18일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고 9월 3일에 왕과 태자, 왕자 ,장군, 대신 등 98명과 백성 1만 2천명이 당나라 장안으로 끌려가게 되자 좌평 복신이 중심이 되어 주류성을 거점으로 삼고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당나라에 끌려갔던 의자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0월에 이르러 복신은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 왜국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일본서기에는 부여풍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니 풍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게 되고, 왜국에서는 군사 5천으로 호위하게 하여 부여풍을 백제로 호송한다. 복신 등은 부여풍이 돌아오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본격적으로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왜국에서..

카테고리 없음 200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