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사비성 4

윤여동설 -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泗沘)는 발해 북쪽 지금의 하북성 난현(난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泗沘)는 발해 북쪽 지금의 하북성 난현(난주) - 최초공개       [난주고성]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A.D.634) 조를 보면,  “봄2월 왕흥사가 준공되었다. 그 절이 강 언덕에 섰으며, 채색을 하여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왕이 자주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향을 피웠다.  3월 궁궐 남쪽에 못을 뚫어 20여리 물을 끌어들이고, 사면에 양류(수양버들)를 심고, 물 가운데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진 뒤편에 자금탑이 보이는데, 옛날 무왕 때의 망해루로 생각되는 곳이다]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물을 끌어들여 못(池)을 만들고 가운데 섬을 방장선산 비슷하게 꾸미고, 수양버들을 심었다고 하였..

카테고리 없음 2014.08.01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백제26대 성왕은 서기 538년 봄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국호까지도 남부여(南扶餘)로 바꾼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537년까지로 끝나고, 538년부터는 남부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인데, "남부여"라는 국호는 "옛 졸본부여의 영광을 남쪽 땅에 재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만 잠깐 언급했을 뿐 실제 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성왕은 왜 이때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 때문에 도읍인 웅진이 위험하다고 보고 더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

카테고리 없음 2008.10.12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의 기록인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 조를 보면, 『당 나라 고종이 조서를 내려 좌위대장군 소정방으로 신구도행군대총관을 삼아 좌위장군 유백영과 우무위장군 풍사귀와 좌효위장군 방효공 등과 더불어 군사 13만을 거느리고 백제로 와서 치게 하고 겸하여 신라왕 김춘추로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자기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당 나라 군사와 세력을 합하게 하였다.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城山: 현 산동반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나라(신라)의 서쪽 덕물도에 이르니 신라왕이 장군 김유신을 보내어 정병 5만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게 하였다. 왕(백제 의자왕)이 이 소문을 듣고 여러 신하..

카테고리 없음 2008.04.07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당나라의 소정방이 타고 올라와 백제를 멸망시킨 백강(白江)은 지금의 난하하류 우리는 지금 서기 660년에 당나라의 소정방이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서해바다를 건너 지금의 금강을 타고 올라가 충남 부여의 사비성을 공격해 백제를 멸망 시켰다고 역사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소정방과 김법민이 만난 덕물도를 지금의 덕적도일 것이라 하고, 당나라군이 타고 올라온 백강구를 금강 하류일 것이라 하며,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합류한 기벌포를 충남 서천, 군산, 강경 쯤일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백제 멸망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탄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황산이 어디를 말하는지, 기벌포가 어디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