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서진낙랑군 3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그리고 서진낙랑군(西晉樂浪郡)의 위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과 후한낙랑군(後漢樂浪郡)그리고 서진낙랑군(西晉樂浪郡)의 위치는 각각 다른 곳이었다 – 최초주장     [위 : 옛 갈석산(碣石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낭아산(狼牙山) 풍경]    전한(前漢) 무제 때인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설치했던 원래의 한사군(漢四郡)은,   낙랑군(樂浪郡, 치소는 고조선(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진번군(眞番郡, 치소는 우수주였던 지금의 요녕성 능원),  임둔군(臨屯郡, 치소는 명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통요의 고륜기),  현토군(玄菟郡, 치소는 함주였던 지금의 내몽골 적봉의 옹우특기)이었다.   그런데 진번군과 임둔군은 설치된 지 26년 후인 기원전 82년..

카테고리 없음 2024.10.05

윤여동설 –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樂浪)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樂浪)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최초주장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낙랑군도 없었고, 최숭이나 최리로 대표되는 낙랑국도 없었다. 왜냐하면 환인의 환국, 환웅의 단국, 왕검의 조선(고조선)과 부여, 예, 개마, 옥저 그리고 위만조선과 삼한이 모두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 환단고기 단군세기 13세 단군 흘달 조를 보면, “갑오16년(B.C.1782) 이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흘달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돕게 하니 은나라의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이 조약..

카테고리 없음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