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염수 3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요(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죽어 묻힌 조주(祖州)의 조릉(祖陵)을 찾아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요(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죽어 묻힌 조주(祖州)의 조릉(祖陵)을 찾아라 - 최초공개 [요(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능을 조성한 후 능침의 수호를 위하여 설치했다는 조주천성군상절도(祖州天成軍上節度) 추정지, 규모 : 가로 약800m, 세로 약550m, 좌표 : 동경113도16분, 북위41도40분)] 요사(遼史) 지리지를 보면, “태조(요 태조 야율아보기)가 천제(天梯)、몽국(蒙國)、별로(別魯) 등 3산(三山)의 형세(形勢)를 취하여 위전(葦甸)으로 삼고, 금착전(金齪箭)을 쏘아서 표시하였는데, 이를 용미궁(龍眉宮)이라 하였다. 신책(神冊) 3년(918년)에 그곳에 성을 세우고 이름을 황도(皇都)라 하였다가 천현(天顯) 13년(938년)에 다시 이름을 상경(上京)이라 고치고 부(..

카테고리 없음 2019.03.01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의 정복지 비려 염수와 개선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의 정복지 비려 염수와 개선로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을미년 조를 보면, “영락 5년 을미년에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과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3개 부(部)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하였다. 양평(襄平) 길을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力城), 북풍(北豐)을 거쳐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러 지명이 언급되고 있다. 비려(碑麗), 부산(富山), 부산(負山), 염수(鹽水), 양평(襄平), 역성(力城), 북풍(北豐)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카테고리 없음 2012.01.13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와 염수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조를 보면, “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세 개 부락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했다.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北豐)을 거쳐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정확히 밝힌 사람은 없었다. 학자들은 비려가 거란의 한 일파였다고 알..

카테고리 없음 201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