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의 정복지 비려 염수와 개선로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을미년 조를 보면, “영락 5년 을미년에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과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3개 부(部)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하였다. 양평(襄平) 길을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力城), 북풍(北豐)을 거쳐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러 지명이 언급되고 있다. 비려(碑麗), 부산(富山), 부산(負山), 염수(鹽水), 양평(襄平), 역성(力城), 북풍(北豐)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