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자명고 3

윤여동설 - 낙랑군과 낙랑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군과 낙랑국 - 최초주장 대무신왕은 고구려의 3대왕으로서 2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었다. 유리왕의 장자 즉 다물후 송양의 큰딸이 유리왕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 도절은 일찍 죽었고, 유리왕의 계비 화희가 낳은 둘째아들 해명은 유리왕이 졸본에서 국내로 도읍을 옮기려 할 때 그를 반대하다가 유리왕으로부터 스스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고 죽었다. 그리하여 유리왕이 다물후 송양의 작은 딸을 다시 왕비로 맞아들여 낳은 아들이 바로 대무신왕 무휼이었다. 무휼(대무신왕)은 자라 15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모본호족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고, 또 갈사왕의 손녀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호동왕자였다. 이때까지도 원비였던 모본호족의 딸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아들을 낳게된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4.21

윤여동설 -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밤을 지새웠을 낙랑국왕성 전경도] 우리는 지금 고구려 대무신왕의 맏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매우 안타깝게 ..

카테고리 없음 2008.09.05

윤여동설화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윤여동설화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피서산장 현판 피서산장(열하행궁) 상제각 우리는 지금 고구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매우 안타까워하는데, 삼국사기를 잘 읽어보면 호동왕자의 아버지인 대무신왕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을 역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이었던 호동왕자가 남옥저에 놀러 갔는데, 낙랑왕 최리가 그를 보고 "그대의 용모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대가 북국 신왕(대무신왕)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자기의 딸로써 아내를 삼게 하였다. 뒤에 호동이 본국으로 돌아와 가만히 사람을 보내 낙랑공주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무기고에 들어가 (낙랑국의) 북과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

카테고리 없음 2007.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