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최치원 4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발해 북쪽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발해 북쪽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가야산 정상 부근에 나타나는 소머리 형상] 가야산 해인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40대 애장왕 3년(A.D.802) 조에 “8월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해인사가 창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0여년 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 경남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가 바로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가야산 해인사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원래 한나라 때의 낙랑 부근에서 건국된 나라였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이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카테고리 없음 2009.07.03

윤여동설 - 천부경은 숫자생성의 원리를 설명한 것

윤여동설 - 천부경은 숫자생성의 원리를 설명한 것 中本衍運三三一盡一 天 天本萬三大天三本始 符 地心往四三二一天無 經 一本萬成合三積一始 一太來環六地十一一 終陽用五生二鉅地析 無昻變七七三無一三 終明不一八人궤二極 一人動妙九二化人無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십시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천부경은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옛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는 것인데, 이 천부경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 우리는 지금 어느 것이 정확한 해석인지 알 수가 없다. 최고운이 원문과 함께 해석도 같이 전하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인데, 오직 천부경 81자 만을 전하였으니 그의 공은 크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카테고리 없음 2009.02.04

윤여동자료 - 고운 최치원의 토황소격문(격황소서) 번역문

윤여동자료 - 천하명문으로 알려진 최치원의 토황소격문(檄黃巢書) [고운 최치원선생 초상]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중국에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나아가 있던 신라 사람 최치원은 그 토벌총사령관 고변의 휘하에 종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변은 이때 최치원으로 하여금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격문을 짓도록 하였는데, 이 격문이 바로 천하명문으로 알려진 "토황소격문(檄黃巢書)"이다. 황소가 이 격문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는 일화가 전할만큼 뛰어난 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학창시절 토황소격문이 신라 사람 고운 최치원이 지었고, 천하 명문이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정말로 그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시문집..

카테고리 없음 2008.10.09

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 최초주장    우리 역사상 여자가 왕위에 오른 나라는 신라 뿐으로서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세 여왕 중 유독히 진성여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좋지 않게 전해져 지금도 진성여왕은 신라시대의 난잡했던 여왕으로 인식되고 있고, 결국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왕으로 치부되고 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 딸로서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고, 그 언니였던 천명공주가 진골이었으며 진지왕의 장자였던 용수에게 시집을 갔던 관계로 진평왕은 성골인 둘째 딸 덕만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때 김유신이라는 용장을 얻게 되어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고,..

카테고리 없음 2008.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