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하백의 딸 4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왕검은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고조선(왕검조선)의 초대 황후가 곧 하백의 딸이었다는 말이다. [단군왕검의 왕후가 되었던 비서갑 하백녀의 모습일까?] 이암(李嵒)의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보면, “무진년 제요도당(요 임금) 때에 왕검이 단국(檀國 : 환웅국)으로부터 아사달(阿斯達 : 아사달 부근의 태백산의 오기일 것이다)의 단목지허(檀木之墟 : 신단수터 즉 단목이 있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의 아들로 삼게 되었다..... 비서갑(斐西岬)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아내로 삼아 양잠을 관장하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

카테고리 없음 2019.03.29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앞서 해부루왕이)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칭 천제 해모수(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鴨綠江)가에 있는 집안으로 유인하여 동침하고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 우발수로 보내 귀양살이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의 고향이 웅심산아래 압록강변이었음을 알게 하고, 하백(河伯..

카테고리 없음 2014.03.09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700년설"이고, 900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900년설"이다. 고구려 700년설은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멸망함으로써 705년간 존속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고, 고구려 900년설은 신당서 고구려전에 시어사 가언충이 당 고종에게 보고하는 말 중에 "고구려가 한(漢)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어 지금 900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조에는 또 고구려가 멸망한 후 문무왕이 신라로 망명해 온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삼는 책명문에 "공의 태조 중모왕은 덕을 북쪽 산에 쌓고 ..

카테고리 없음 2009.06.04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가장 정확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당시의 기록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

카테고리 없음 2009.04.12